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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서생’ 김훈이 말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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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5  13: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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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가 27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 규탄 및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 촉구 청년, 시민사회 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승혜 기자] 소설가 김훈은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등단하여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 2004년 <화장>으로 이상문학상, 2005년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 2007년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우리 시대의 대표 소설가이다.

영문과 중퇴, 30여 년의 기자 생활, 1995년 불현듯 소설가가 되어 지금까지, 그의 손을 움직여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밥벌이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밥을 열심히 성실하게 벌고, 그 안에서 도덕을 실현하는 것이죠.”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훈소설가는 지난달 27일 “산업 재해로 현장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교육을 잘 못 받고, 말하자면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나는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반드시 불평등의 구조와 계급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날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생명안전 시민이야기 마당’에서 “가령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사람들이 이 나라의 돈이 많고 권세가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렇게 죽었다면 이 문제는 진즉 해결되었다. 절대 이렇게 방치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무엇이 골방서생이라 자평하던 그가 최근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짧지 않은 글을 SNS를 통해 지인에게 보냈다. 시사플러스에서 해당 글을 소개한다.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다.

'냉각 완료'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好喪)입니다"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보다는 '흐린'이라는 형용사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

책을 버리기는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게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을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다.

―딸아, 잘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정도면 어떨까 싶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미안허다.

를 남겼다. 한 생애가 4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

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라는 시문을 남겼고, 임종의 자리에서는

―매화에 물 줘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기록했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유언이지만 생활의 구체성이 모자란다.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김용택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님한테서 직접 들었다. 몇 년 후에 김용택의 시골집에 가봤더니 그때까지도 연탄보일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퇴계 선생님, 김용택의 아버지, 이 세 분의 유언 중에서 나는 김용택 아버지의 유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인생의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필요하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한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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