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김민호 기자]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인들은 모두 국가주의자들이었다. 우파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면, 좌파는 국가 권력의 장악을 통한 사회 변혁을 꿈꿨다.

1980년대 이전엔 말 한 번 잘못하면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말 한 번 잘못했다간 국가주의자나, 최악의 경우엔 파시스트로 찍히기 십상이었다.

1968년 전후의 세계적 학생혁명으로 신좌파 이론이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노동거부, 해체, 탈주 등으로 불리는 지식상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런 신좌파 이론들의 특징은 1960~1970년대 당시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싸잡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구좌파가 꿈꿨던 '생산수단의 사회화' 따위는 1968년 당시에 이미 '흘러간 노래'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시대를 공유한 신좌파, 소위 진보의 변혁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국가 혹은 체제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냥 반항하고 허무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에게 있어, 국가나 체제는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억압이었기 때문이다. 신좌파 운동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등 특정한 국가ㆍ제도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적 규칙 그 자체에 반역을 꾀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복'을 지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진보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를 외쳤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으로.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다.

조국 역시 이같은 확고한 개인적 사고를 갖춘 신자유주의 윤리의 신봉자이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는 "이러한 개인들이 늘어나면, 과학적으로나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신자유주의의 여러 제도와 정책들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용납되고 지속될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와 정책이 정착되면 또 그러한 개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고 했다.

이른바 ‘법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웃과 윤리와 공동체에 대한 모든 고려를 제쳐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너의 잇속을 챙겨라.’라는 부류의 탄생이다.

그는 "이번 조국 사태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점은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방금 말한 신자유주의 윤리의 신봉자라는 점이었다. 조국 교수 일가의 행태는 바로 위에서 말한 신자유주의 행동 윤리를 알뜰하게 실천한 것임이 명백하다. 그 일가의 변칙적 행동들은 분명코 개인의 잇속을 채우는 행동이었을 뿐, 공동체와 윤리를 고려한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고  비판했다.

 “입시 시스템이 이런데 어쩌란 말인가?” “공직자는 물질적 욕심을 추구하면 안된단 말인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한에서 가장 유리한 상속 방식을 취한 것이 뭐가 문제인가” “조국처럼 살지 않은 자부터 돌을 던져라” 등등. 그 모든 이야기는 다음의 한마디로 뭉쳐진다. “그래서 조국 교수가 불법이라도 저질렀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지식인, 정치가, 심지어 유력 매체까지 일제히 나서서 이같이 한목소리로 외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진보’는 무슨 논리로 또 무슨 낯짝으로 복지국가와 연대를, 노동과 소수자를, 평화와 통일을, 조세 정의와 인간적 교육을 외치며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가? 왜 나더러 조국 교수 일가와 다르게 살라고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할 것인가? 그냥저냥 비슷하게 대충 살아가는 당신들이 굳이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 15일 '불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진영도 과거 적폐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진보가 기득권에 연연하면 진보가 아니다. 그건 진보꼰대다. 이건 더 나쁘다. 자기확신을 갖고 꼰대짓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논리에 갇혀 젊은 층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하면 진보가 아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보수를 낡은 보수 혹은 수구라 표현하지 않나.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란 것이다. 이들보다 높은 기대를 받기 때문에 더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이다. 무능한 진보라면 역사 발전에 걸림돌이다. 진보는 유능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진화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변화'는 방향성이 없는 생물체가 변이되는 것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이 '진화'라 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지금은 무능한 진보의 세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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