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김승혜 기자] 서강대 총장을 역임한 박홍 신부가 2년 넘게 신장 투석을 받으며 투병해오다 9일 오전 4시40분 당뇨병 합병증으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77세.

박 전 총장은 2017년 신장 투석을 받아 몸 상태가 악화해 서울아산병원을 찾았고, 이곳에서 당뇨 합병증 판정을 받고서 치료를 받아왔다. 최근에는 몸 상태가 악화해 입원 치료를 받다 이날 오전 4시 40분 세상을 뜬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박홍 신부가 1년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매체와의 인터뷰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오태순 신부와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김원율 교리연구소장이 “박 신부가 한 달 반 전, 3주 동안 의식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좋아지셨다”고 조선일보 기자에게 알려와 성사됐다.

매체에 따르면 1980~90년대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시절, 박홍 서강대 총장(1989~ 1997년)은 주로 정부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잡혀간 학생들을 석방시키려 정부 측 검·경, 법무부 쪽 인사들과 만나야 했다. 시대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폭탄주를 몇 순배 돌렸다. 다른 대학 총장들은 5~6잔에 푹푹 쓰러졌지만, 박홍 총장은 10잔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또 “담배는 정신의 비타민”이라며 한창때 하루 3갑씩 피웠다.

그러다 지난 2009년 6월 충북 음성의 꽃동네 마을에서 열렸던 ‘가톨릭 세계지도자 성령대회’를 돕다가 대회 1주일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기자는 “공산주의야말로 꿀 바른 독(毒)”이라 설파하던, 직설적이고 거친 입담의 그가 10년 가까이 투병 중이란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8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지금 50kg이 채 되지 않는다."고 박 전 총장의 모습을 전했다.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로 넘어오면서 학생운동은 폭력성과 좌경 사상성(친북·반정부·반미 폭력투쟁)이 농후했다. 그 시절, 그는 “학생운동에 ‘레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며 온몸으로 맞섰다. 그러나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폭력시위는 점점 대학가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에 대해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성모(聖母)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셔서 가능해졌어요.”라고 답했다.

서강대 총장 시절, 그는 학생들이 주사파에 물들었다고 비난했지만 한편으로 교도소를 찾아가 학생들을 설득했고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 등을 만나 “쌀 먹은 사람은 안 걸리고 당가리(당가루) 먹은 놈만 걸려 들어간다. 진짜배기 좌익은 안 잡고 (데모)꾼만 잡혀온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발인은 11일,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다.

박홍 전 서강대 총장 주요 약력

1941년 대구 출생. 성신고, 가톨릭대 철학과·광주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영성신학 석사·교황청 그레고리안대 신학박사, 미국 알마대 명예문학박사 / 서강대 총장, 서강대 이사장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제7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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