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소위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외교통일위원회 미주 소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로 판사 출신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추미애 의원이 법무장관이 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탁한 강금실 전 법무장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법무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2일 YTN을 통해  추 의원이 법무장관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추미애 의원은 법조계 출신에 당 대표 이력까지 갖춘데다 검찰개혁 추진력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사 출신인 추 의원은 헌정 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으로, 집권 여당을 지휘한 정치력이 강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이어 지난해 6·13 지방선거까지 압승으로 이끌었다. 청문회 낙마 가능성이 적은 현역 의원이라는 점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의원과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 의원이 거론됐지만 최근 여권에서는 추 의원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추 의원 측은 차기 법무부 장관 추천설에 "우리 측이나 청와대나 모두 조심스러운 사안"이라며 장관직 제의 여부에는 즉답을 피했다.

한편 추미애 의원의 법무장관 '유력설'과 관련, 네티즌들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추 의원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공식석상에서의 만남은 지난해 5월 13일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다. 이날 개소식에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10여명의 전·현직 의원, 제주 출신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지난해 9월 1일 김부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강금실 변호사는 추미애 전 대표와 친하고 추 전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호한다”는 지인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추미애 누구?

추미애 의원은 1958년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옷값을 변상하느라 집안이 어려워진 데다 막내까지 태어나자 부모님은 세 살 밖에 안 된 그를 외갓집에 보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외갓집에서 자란 그는 강한 ‘독립심’을 키웠다. 그에게 자주 나타나는 ‘반항적 기질’과 ‘기득권에 대한 분노’는 이때 형성된 결핍심리일 수도 있다. 그가 부모의 반대에도 호남 출신에 다리 장애까지 있는 대학(한양대) 동기동창(서성환)과 결혼한 것도 이런 연장선일 것이다.

그는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춘천·인천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를 했다. 법조계에서는 영호남을 넘어선 캠퍼스 커플 판사로 통했다. 하지만 판사 생활 10년 만인 1995년 DJ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대구 출신의 친구들과 달리 호남 출신 DJ가 만든 당에 가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는 초선 의원 시절 전관예우와 법조 브로커가 얽힌 사법부 부패의 실상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그는 사법적 정의에 실망해 정치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그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택한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는 슬로건도 그의 진심이었다.

그의 진가는 이어진 1997년 대선에서 빛이 났다. 그는 DJ 특보, 유세단장으로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때 얻은 별명이 바로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잔다르크에서 따온 ‘추다르크’다.

1997년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의 정치적 주가는 더욱 뛰었다. 2000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여성, 21세기를 빛낼 여성’에, 2003년 <시사저널>이 시민단체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감 1위’로 뽑혔다. 2004년에는 ‘국민이 뽑은 정당의 최고 정치지도자 1위’(<월간중앙>-ANR 공동 여론조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추미애 의원은 ‘무명’의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는 노무현 후보 측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돼지저금통 선거자금 모으기 운동에 나서 ‘돼지엄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노 후보도 유세를 하면서 그를 ‘차세대 지도자’로 공인했다. 그러나 그는 2004년 노무현 탄핵에 가담했다. 자신이 만든 대통령을 스스로 탄핵하겠다는 180도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는 광주 전남도청에서 망월동까지 3일간 삼보일배를 했지만 탄핵역풍을 맞고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첫 시련으로 기록된다.

낙선의 회한을 달래던 추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지역구 3선인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2009년 12월 30일 추 위원장은 정부·여당이 합의한 노동관계법을 야당 의원의 참여를 막고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본회의에서 날치기로 통과됐다. 야당의 당론도 물론 반대였고, 그때까지 추 위원장의 ‘노동관’에 비추어 180도 다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은 추 위원장을 향해 “위선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이은 두 번째 배신”이라고 소리쳤다. 당론을 어기고 여당의 ‘날치기’에 동조한 추 위원장은 자격정지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추 의원은 이 사건으로 당내에서 ‘왕따’당하고 이후 서울시장 출마계획 등에 차질을 빚었다.

왜 그는 자신이 만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려 했을까. 물론 그는 자신이 주도하지 않고 ‘따라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왜 탄핵에 동조했는지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그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강금실 법무장관’에 비해 덜 대접받은 섭섭함도 포함된다. 그는 장관 물망에 여러 번 올랐지만 기용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강 장관과 비교될 때 ‘질투’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이번 12월 중순으로 점춰지는 '총선용' 개각에는 민주당 중진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여당 내에서 중진용퇴론이 나오고 있는 만큼 중진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불출마를 전제로 장관직을 열어준다는 차원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무총리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4선)과 원혜영 의원 (5선), 김진표 의원 (4선) 등도 거론되고 있다.

어찌 됐든 그는 이 선택이 잘못임을 인정했다. 그는 “대선운동을 해냈고 같이 부둥켜안고 승리를 기뻐했던 대통령과 인간적인 해후를 하지 못한 채 영영 작별했다”면서 “사과의 타이밍을 놓친 것을 무척 후회했다”고 고백했다.(자신의 저서 <물러서지 않는 진심>(2013년) 그는 이번 전당대회 전·후 봉하마을을 찾아 눈물로 참회했다.

이상은 2016년 9월 27일 경향신문에 실린 추미애 의원에 대한 설명이다.

한편 이번 12월 중순으로 점춰지는 '총선용' 개각에는 민주당 중진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여당 내에서 중진용퇴론이 나오고 있는 만큼 중진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불출마를 전제로 장관직을 열어준다는 차원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무총리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4선)과 원혜영 의원 (5선), 김진표 의원 (4선) 등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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