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김민호 기자] 입시비리와 차명 투자 연루 의혹을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14일 조사를 받았다.

이날 조국은 조사 아닌 조사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문자를 통해. "아내의 공소장과 언론 등에서 저와 관련하여 거론되고 있는 혐의 전체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서 분명히 부인하는 입장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불필요하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은 논평에서 “피의자로 전락한 조국이 검찰에 출석해 무려 8시간 동안 묵비권을 행사했다. 참으로 고약한 양심파괴자”라고 비난했다. 이어 "해명이 구차한 게 아니라 빼도 박도 못 할 차고 넘치는 증거에 입을 다물었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하겠다”며 “최소한의 죄의식도 뉘우침도 없다”고 질타했다.

'피의자' 조국, 진보의 아이콘으로 이름이 회자되던 2003년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한비자 '팔간(八姦)'을 인용해 조언을 했다. 마치 16년 후 자신의 모습을 예언한 듯...

조국은 그해 2월 26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시론을 통해 한비자(韓非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八姦)'을 예로 들며 "'입속의 혀' 같은 대통령 측근들을 조심하라"는 고언을 남겼다.

이 글에서 조국 교수는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 측근, 정부와 집권당의 중요 인사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집권 초기의 뜻과 계획은 사그라지고 말 것"이라며 "각계각층의 이익집단들은 영부인·자녀·며느리·사위 등의 친인척에게 온갖 연고를 동원해 다면적·단계별 로비를 전개할 것이므로, 피와 살이 섞인 '동상'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내리고, 이들을 통한 인사청탁이나 정책 조언은 무조건 잘라낼 것"을 주문했다.

이어 "'양앙'(養殃)하는 자, 즉 대통령의 사적인 기호(嗜好)와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자력을 동원하려는 자는 재앙을 조장할 것"이라며 "예컨대 '노(盧)비어천가'를 부르려고 애쓰는 자, 대통령이나 영부인께서 학사학위가 없음을 건수로 하여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고 말하는 자들을 단호히 물리치라"고 충고했다.

또한 "'민맹'(民萌)하는 자, 즉 공직에 앉아 있으면서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공공의 재화를 흩뿌려 사람들을 좋아하게 하고 하찮은 은혜를 베풀면서' 자신의 위세를 세우고 세력을 넓히려는 사람 역시 사가(私家)로 돌려보내야 하고,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대화 통로가 막혀 있음을 이용해 국민의 소리를 전달한다는 미명 아래 유창한 변설(辨說)을 구사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교수가 2003년 당시 신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건넨 시론 전문이다.(뉴데일리 2019년 9월 23일자 참고)

[시론]  '팔간(八姦)'을 경계하십시오

노무현 대통령 귀하.

취임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축하의 인사가 아닌 경고의 간언(諫言)을 드리게 됐습니다. 저는 새정부가 밝힌 10대 국정과제가 현 단계 우리 사회의 혁신을 위해 온전히 실현되기를 고대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 측근, 정부와 집권당의 중요 인사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집권 초기의 뜻과 계획은 사그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는 대통령 개인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의 좌절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에 저는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동시에 한비자(韓非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 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八姦)'의 문언을 빌려 고언(苦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입속의 혀' 같은 대통령 측근들

첫째, '동상(同床)' 즉 잠자리를 같이하는 자를 경계하십시오. 향후 각계각층의 이익집단들은 영부인·자녀·며느리·사위 등의 친인척에게 온갖 연고를 동원해 다면적, 단계별 로비를 전개할 것입니다. 피와 살이 섞인 '동상'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내리시고, 이들을 통한 인사청탁이나 정책조언은 무조건 잘라내십시오.

둘째, '재방(在旁)' 즉 대통령의 마음을 잘 읽고 처신하는 '입 속의 혀' 같은 측근을 조심하십시오. '명하지도 않았는데도 예예 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분부대로 하겠노라고 말하며, 생각하기도 전에 뜻을 받들고 용모를 엿보거나 안색을 살펴서'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는 자 말입니다. 이들에게만 의존하는 대통령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셋째, '부형(父兄)'의 행태 역시 주의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오랫동안 친애하며 아버지나 형님처럼 모시고 따랐던 '대신정리(大臣廷吏)'들이 권력형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것을 초반부터 예방하십시오.

집권당과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이 '부형'들의 집에는 언제든지 현금이나 무기명채권이 가득찬 골프가방이 배달될 수 있습니다.

넷째, '양앙(養殃)'하는 자, 즉 대통령의 사적인 기호(嗜好)와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자력을 동원하려는 자는 재앙을 조장할 것입니다.

예컨대 '노(盧)비어천가'를 부르려고 애쓰는 자, 대통령이나 영부인께서 학사학위가 없음을 건수로 하여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고 말하는 자들을 단호히 물리치십시오.

다섯째, '민맹(民萌)'하는 자, 즉 공직에 앉아 있으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공공의 재화를 흩뿌려 사람들을 좋아하게 하고 하찮은 은혜를 베풀면서' 자신의 위세를 세우고 세력을 넓히려는 사람 역시 사가(私家)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정부와 공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돈은 국민의 피와 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유행(流行)'하는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대화 통로가 막혀 있음을 이용해 국민의 소리를 전달한다는 미명 아래 유창한 변설(辨說)을 구사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사람을 멀리해야 합니다.

일곱째, '위강(威强)'하려는 자, 즉 대통령의 위세를 빌려 별도의 파당을 지어 세력을 형성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는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참여 정부'의 이름에 걸맞도록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고, 국민의 참여를 북돋우십시오.

국민의 소리 직접 들어야

마지막으로 여덟째인 '사방(四方)'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사방에 있는 주변 대국의 위세를 빌려 대통령을 이끌려고 하는 사람에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대통령은 철저히 국가 이익과 민족 이익을 중심에 두고 외교에 임하셔야 할 것입니다.

취임 초기에 곰팡내 나는 옛 글을 빌려 쓴소리를 드리게 된 것은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와 당에 포진해 있는 집권세력 전체가 항상 자경자계(自警自戒)하고, 또 힘을 모아 우리 사회의 혁신을 추동(推動)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안착시켜 내시길 간곡히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임기 말에 이러한 저의 글월이 공연한 기우에 불과했음을 입증해 주십시오. 그때까지 시민사회운동은 바깥에서 감시와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조 국(서울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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