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용예 사진전 '낮은 섬 가파도 할망바다' (사진=유용예 작가 제공)
[심일보 대기자] 하루의 시작은 포털 주요 뉴스와 메일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도(?) 직업이 종이쟁이라 메일을 통해 보도자료와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온다.  '따듯한 편지'도 그 중 하나다.

오늘 온 메일 중 '진짜 해녀가 된 작가'라는 제목에 끌려 계속 읽어 내려갔다. 편지는 "사진작가이자 제주 가파도의 해녀인 유용예 작가는 예전에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시작했다.

편지는 '왜?'라는 궁금증에 대해 아래와 같이 잔잔하게 그 이유를 전했다.

"IT업계 직장인, 디자이너, 초고속 승진, 높은 연봉과 안락한 삶을 가진 그녀가 그저 지쳤을 때 찾아간 제주도에서 만난 해녀와 몇 마디 말을 나눴을 뿐입니다. 그리고 무작정 제주도 서남쪽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거리인 가파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해녀들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갔지만, 첫 1년 동안은 차마 렌즈를 들이대지 못했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따라다니며 해녀들의 삶 속으로 조금씩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1년이 지나 카메라를 들었습니다.처음에는 산소통을 메고 해녀들과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온갖 장비를 갖춘 그녀는, 고작 오리발 하나로 자맥질을 하는 해녀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버벅대기만 했습니다. 결국 장비를 벗어던지고 맨 숨으로 물속의 해녀들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유용예 작가는 그간 찍은 사진 작품들을 마을 담벼락에 전시했습니다. 해녀뿐 아니라 마을의 구석구석을 찍었습니다. 바람에 누운 풀과 돌멩이 하나에도 섬이 녹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들이 찍힌 커다란 사진을 보며 사진 찍어서 가져다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즐겁게 웃는 해녀 어머님들의 표정에서 유용예 작가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유용예 작가는 법환 해녀 학교에 등록하여 80시간의 교육과 3개월의 인턴 생활을 거쳐 가파도 어촌계에 입성한 정식 해녀입니다. 하군, 중군, 상군, 대상군'으로 구분된 해녀 등급에서 이제 중군을 지나 슬슬 상군의 해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해녀가 되고 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유용예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해녀를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가파도라는 섬을 알고 싶습니다."

이후 편지는 나름의 해석으로 유용예의 삶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 유용예 사진전 '낮은 섬 가파도 할망바다' (사진=유용예 작가 제공)
그에 대한 뉴스 중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 사진가 유용예 가파도 해녀할망 품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내용인즉 사진가 유용예는 지난해 '섬 섬' 전시가 가파도에서 개막했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작가는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의 작고 낮은 섬 가파도에 정착, 해녀들과 함께 숨 쉬고  물질하며 그들의 삶과 애환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나이 든 해녀들이 물질하는 얕은 바다를 뜻하는 '할망바다'를 주제로 여러 차례 전시와 출판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게 해녀 할망은 바다의 꽃이며 빛이다."

자난 9월 중앙일보는 <제주 해녀 기록하던 사진작가, 진짜 해녀가 되다>는 제목으로 유용예의 삶을 조명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처음엔 짝사랑이고 열병인 줄 알았어요. 최근에야 이 섬을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자연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남들처럼 살면서 삶이 변형되어갔죠. 가파도에 와서 삶의 잊힌 부분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정화하는 느낌이랄까요. 이곳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공간입니다”라고 했다.

시사플러스가 19일 이 시대를 사는 '작은 거인'으로 유용예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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