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부패 않고 순환도 않는 돈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변방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빵집주인의 소리 없는 경제혁명에 일본열도가 주목하고 있다. 오카야마 현 북쪽 가쓰야마라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마을 빵집주인이자 제빵사인 와타나베 이타루가 주인공이다.

막연히 시골 농부를 꿈꾸던 사람으로 서른 넘어 간신히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한 평범한 남자였다. 하지만 동경하던 시골과 농사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벅찼던 것도 잠시, 원산지 허위표기니 뒷돈거래니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회사에 염증과 회의를 느낀다.

점차 삶의 진정성을 갈구하며 자신의 내면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천연균을 연구했던 할아버지, 마르크스에 탐닉했던 아버지, 이들의 역량을 물려받은 그는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마침내 빵집을 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부정이 판을 치는 세태가 싫어 '바깥' 세상으로 탈출하려고 제빵 기술을 배웠는데, 그 '바깥' 세상이어야 할 빵집 공방마저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가혹한 노동과 부조리한 경제구조, 위협받는 먹거리…. 이런 실상을 접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삶의 철학은 더욱 굳건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빵집 '다루마리'에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 서툰 작은 정의감을 실천한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와타나베 이타루는 마르크스 강의를 아홉 번에 걸쳐 펼쳐내며 '마르크스'와 '천연균 발효'라는 두 영역을 조화롭게 접목한다. 빵을 만들면서 빵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균들이 들려주는 목소리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의 인물인 마르크스의 목소리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와타나베 이타루는 21세기 일본 도쿄와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9세기 영국 런던의 노동 현실을 비교한다. 성인은 물론 아이들마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가혹한 노동환경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상품의 조건, 가격의 비밀, 임금의 정체, 이윤의 탄생과정, 기술혁신의 무용에 이르기까지.

그러면서 마르크스와 천연균과의 만남은 시작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즉, 그들의 균형은 '순환'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균의 작용에 의한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스트처럼 인공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음식으로 바꿔버린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이다.

이러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은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 나아가 싸구려 먹거리는 먹거리의 안전을 희생하고 사용가치를 위장함으로써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귀속돼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 간다.

그는 '자본론' 공부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이것을 '부패하는 경제'라 명명한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차를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결국 이러한 '부패하지 않고, 순환도 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불합리에 정당하게 맞서는 그의 삶의 태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또 지속 가능한 삶과 사회에 대한 그의 지향과 모색은 오늘날의 사회를 끊임없이 발효시킬 것이다. 정문주 옮김, 235쪽, 1만4000원,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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