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씨어터에서 연극 '범죄소녀들' 배우 이진샘, 조정환, 조혜진, 김은아, 맹선화, 문학연, 김현정, 강동웅(왼쪽부터)이 공연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김승혜 기자] 다음은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 2019년 겨울호에 실린 청소년들의 글이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 그게 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청소년 자신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삶의 아름다운 변화를 꿈꾸며

흔히들 수능을 12년 공부의 끝이며, 열매라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수능을 친 직후부터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뿌듯함이나 후련함이나 그 어떤 새로운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그저 내일은 또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에게 수능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 과정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오롯이 수능만을 위해 이루어집니다. 좋은 인간으로 사는 것과는, 심지어는 우리 교육의 목적인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합니다.

 제가 12년 동안 배운 지식은 절반 이상 곧 잊힐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12년이라는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대개 우리 삶에 쓸모없는 것들을 배우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정보 지식의 암기식 교육이 이제 필요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모두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면서 체감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 방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다수가 그렇게 한다는 것, 또 그것이 분별력이 있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아마 큰 변화가 없는 한 그 이후의 삶도 이전과 비슷한 형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계발서나 성공한 누군가의 강연을 듣고 그들이 했다는 대로, 혹은 자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마치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별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되니 말입니다. 이 방식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질문한다고 하여도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우리는 지금까지 잘 지켜 걸어오던 길에서 잠시 멈추거나,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모두가 가는 그 길에서 뛰쳐나간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레타는 수업 시간에 환경오염에 대해 배웠고 깊이 절망했고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꿨습니다. 그레타는 끝없이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고 행동합니다. 채식을 시작했고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인터뷰하고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대신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과 함께 기후위기를 알리는 시위를 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고, 해결하기 위해선 위기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구의 미래를 위해 지금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웁니다.

그레타 툰베리만의 일은 아닙니다. 마하트마 간디, 라울 발렌베리, 마틴 루터 킹, 레이첼 코리, 말랄라 유사프자이…. 세계를 선하게,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바꾸려 노력한 이들은 모두 이 세계를 정확히 알고자 노력했고, 진실에 눈뜬 순간 옳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평화를 지키자고, 모두는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불의에 저항하자고, 모두에게 기회를 주자고, 미래를 위해 행동하자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평화에 대해, 자유에 대해, 정의에 대해.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합니다. 누군가는 책을 쓰는 방법으로, 누군가는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누군가는 교육의 내용을 바꾸고, 누군가는 삶의 양식 전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보편적으로 옳은 가치는 모두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킬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왔습니다.

 다시 수능의 문제로 되돌아가 봅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수능을 통해 사람들을 평가하고 분류합니다. 꼭 수능이 아니더라도 그런 규격화된 시험과 자격증으로 사람을 나눕니다. 국어는 몇 등급, 토익은 몇 점, 연봉은 얼마,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과연 삶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부여되는 것’으로 존재가치가 생기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삶은 스스로가 선택하고 구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자 하는지, 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나를 지탱하고 구성하는 말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 끝에는 반드시 모두에게 이로운 보편적인 가치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래리, 그런 질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물어온 것들이잖아. 만일 해답이 있다면 벌써 밝혀졌을 거야.”

지금 제가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것들은 이미 옛날 옛적부터 사람들이 물어오고 답을 찾아오던 것들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답이 없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답이 없어도 절망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 삶은 존재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살아갈 이유는 바로 내 삶을 이끌 소중한 가치를 찾는 여정에 있을 것입니다.
-송현진(19세)

“한 사회가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약자에게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약자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철학자 칸트는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가지며, 서로를 도구화하여 수단의 기능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돈이라는 수단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할 때, 가격만 남고 존엄성은 사라집니다. 즉, 돈이라는 수단이 절대적인 것이 될 때, 정의로운 법은 사라지고 가격만 따지는 법만 남아 강자만 유리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문제로 떠오른 교육 공정성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보편으로서 교육이, 오직 돈이 있는 사람만 특권으로 누리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강자가 얼마나 빼앗기냐가 아니고, 약자가 얼마나 받지 못했는가, 혹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상황이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가능해야만 그 다음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정의로운지는 반드시 약자의 시선에서 봐야 합니다.”
- 이연경(17세),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기사 중에서

“용기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땅한 때에 두려워하는 사람도 용감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은 큰일이 자신에게 왔을 때 두렵고 무서운 것을 견디며 고귀한 목적으로 선한 행위를 합니다. 용기라는 이 덕목은 지금 당장 제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제가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 꼭 필요할 것이고, 제가 찾게 될 것입니다. 강요 때문이 아니라, 강렬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위험을 몰라서가 아니라 제 의지대로, 제가 용기를 찾을 때 그 용기를 실현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큰 목적인 행복에 다가설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 이선우(15세), 「선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행복에 가닿을 수 있다」 기사 중에서

“인간의 존엄함은 어떤 사람이건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 믿음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이 받는 당연하지 못한 일들을 옳은 방향으로 바뀌게 할 것입니다. 소년범, 사형수도 인간이고 그러므로 존엄하므로 소년범을 중형에 처하게 할 수 없으며 사형수라는 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또 인간이 존엄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북한사람이나 일본인을 그저 혐오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과 관련한 문제 그 자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 장애인 시설은 싫다고 이야기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마음도 장애인 학생의 학교가 나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뀔 것입니다.”
- 정수영(15세), 「정의로운 자비와 함께 인간답게 살다」 기사 중에서

“하지만 우리는 우주의 시간에 비해 티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그 순간을 기쁨보다 슬픔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항상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바쁘게 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속에 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완전히 그 불행을 이겨낼 수는 없지만, 하늘을 보고 그 순간 위안받고, 살아갈 동력을 얻습니다. 하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힘든 순간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늘을 보고 살자고요. 허리와 목을 쭉 펴서, 행복과 긍정적인 마음도 쭉 피면서 말이죠. 항상 가슴속에 작은 별 하나를 품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 역시도 누군가의 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전태화(15세),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나누는 별입니다」 기사 중에서

“우리는 ‘사회적 상상력’에 대해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을 이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상상하고, 인간애를 가지고 타인의 삶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우리 교육과 사회에 그러한 사회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불평등은 잘못되었습니다. 이를 인지하고 더 나은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적을 잘 받는 이가 아니라 도덕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그 삶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일이 곧 타인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을 책임지는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책임지는 것과 같습니다. 타자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에서부터 이 세계의 교육의 논리를 구원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그런 움직임에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최은수(18세), 「왜 우리는 교육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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