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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人] 송창식 이야기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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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8  1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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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송창식
[김승혜 기자] 한국 가요사에서 단 한 명의 천재를 뽑으라고 하면 '송창식'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다.

가수 송창식은 특유의 감성과 노래 가사에 나타나는 주인공 행동을 연상시켜주는 독특한 애드립부터 클래식 전공자답게 엄청난 성량까지 지닌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전성기 시절 엄청난 퀄리티의 시대를 앞서간 곡들을 뽑아 냈는데 매우 많은 그의 노래들 대부분이 송창식 본인의 작사, 작곡이다.

일반인들이 알고있는 송창식은 197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끌었던 음악다방 '쎄씨봉'의 멤버였다. '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한번쯤'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개량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기인' '도인'이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지난 25일 밤 10시 TV조선은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1975년 MBC 가요대상에서 노래 '왜 불러'로 가수왕을 차지한 송창식의 이야기가 공개했다.

법적인 아버지는 6.25때 전사한 경찰관 송모씨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화가 전혁림과 어머니 김모씨 사이에 태어난 혼외자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전사한 이후 어머니는 행방불명되어 여동생과 함께 외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의 최종학력은 서울예고 중퇴로 동창으로는 금난새가 있다. 금난새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음악에 정말 천재였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가난해서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바로 송창식. 애초에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꿈꾸는 클래식 전공자였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중도 포기했다.

이날 방송에서 자신을 '쎄시봉'으로 이끌어 준 MC 이상벽을 만난 송창식은 "쎄시봉 이전에는 최말단 노숙자였다"라며 "2년 동안 서울역에서 잤다"고 밝혔다.

이어 쎄시봉에 합류한 배경을 설명했다. 송창식은 “그 해에 겨우 건설현장에 가서 야방(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생활하는 곳)에 가서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쫓겨나서 쎄시봉으로 갔다. 그 때까지는 전부 (힘든) 언더그라운드에 있다가 쎄시봉에서 밥을 준다 하니까 거기가 온그라운드였다”고 했다. 

이상벽은 “내 기억으로는 홍익대학교 앞에 기타 치는 많은 학생들 중에서 송창식을 내가 쎄시봉으로 데려갔다. 데리고 간 것이 송창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들어가기 전에는 팝음악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고 싫어했다. 쎄시봉에서 조영남을 만난 게 전환점이었다. 조영남을 안 만났으면 팝송에 대한 의욕이 안 생겼을 거다. 조영남 노래를 듣고 팝송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방송에서는 조영남과의 만남도 담겼다. 그는 “송창식이 노래를 너무 감동적으로 불러서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집도 모르는데 작업실 피아노에서 같이 자며 생활했다”고 송창식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송창식과의 첫 만남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이 나와서 아주 남루한 기타로 연주했다. 나보다도 더 거지 같은 모습의 친구가 노래를 하는데 장난이 아니였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세시봉 출신으로 1970-80년대 포크송계를 주름잡았던 가수. 원래는 윤형주와 함께 듀엣 트윈폴리오로 데뷔했다가 윤형주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1970년에 솔로로 전향했다.

하지만, 금전 관리가 철저했고 사업수완이 있었던 윤형주는 많은 재산을 축적해 재산가가 된 반면에 사람이 너무 좋아서 보증도 서 주고 돈도 꿔 달라는 대로 꿔 주던 송창식은 많은 재산을 잃었다. 물론, 송창식이 돈을 잘 벌던 시절에 알랑대며 돈을 꿔 간 사람들 중 제대로 갚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빈털터리인 것은 아니며,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작권료로만 매해 7,500만원의 고정 수입이 있다고 한다. 윤형주와는 트윈 폴리오를 하기 전 부터 절친한 사이였고 지금까지도 그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이날 송창식은 1970년대 대마초 파동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대마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송창식은 "(경찰이) 대마초 사건을 맨 처음 조사할 때 진짜 대마초 피운 사람들 조사가 끝나고 명단을 다 만들어 놓은 다음에 우리 그룹 (멤버 중) 나한테 제일 처음 왔다"라며 "(형사가) '너 이 사람들 다 (대마초를 피웠는데) 넌 왜 안 했냐'(라고 물으니) '나는 안 합니다. 그게 노래하는데 너무 나빠요'(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수사 후 풀려난 송창식은 "나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깐 풀려나왔는데 기자가 사람들에게 '송창식이 이렇게 얘기하더라'라고 해서 내가 평판이 이상해졌다"라며 "여전히 내가 밀고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딸 입양, 아내와의 별거 등 가정사도 공개됐다. 송창식은 "아내와 쌍둥이인 처형이 한국에 있는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해서 그 때 우리가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우리 집에 데려왔다가 입양법이 바뀌어서 (처형에게) 못 보내게 됐다"라며 "(아이를) 못 보내면 우리가 입양하자 해서 우리 딸로 입양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상황에 대해서는 "집사람하고 같이 안 산지 20년 쯤 됐다"라며 "1년에 1~2번 본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졸혼도 아니고 그냥 결혼 상태"라고 했다.

그의 천재성과 위대함

   
▲ TV조선 시사교양 프로그램 '인생 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가수 송창식 (사진=TV조선 '마이웨이' 방송 캡처)
한국 가요사에서 단 한명의 천재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송창식'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강헌이 말하길 가왕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수라 부를 수 있겠다.

송창식 특유의 감성과 노래 가사에 나타나는 주인공 행동을 연상시켜주는 독특한 애드립부터 클래식 전공자답게 엄청난 성량까지 지닌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원래는 정확한 음정, 발음을 구사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부르는 미성이었는데, 트윈폴리오 끝무렵부터 창법이 변하였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가사를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는 소리를 내고 여기에 가사를 맞추는' 것이라 하며, 특유의 웅얼거리는 느낌이 완성되었다.

대표곡은 한번쯤, 가나다라, 가위 바위 보, 담배가게 아가씨[, 고래사냥, 왜 불러, 병사의 향수, 새는, 피리부는 사나이, 참새의 하루 등. 서정주 시인의 시 "푸르른 날"에 곡을 붙인 노래, "사랑이야" 등의 서정적인 노래도 일품이다. 우리는, 밤눈, 창밖에는비오고요 바람불고요, 나의기타이야기, 딩동댕지난여름 등 위 열거한 곡들을 보듯이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과 명곡들이 즐비하다.

항상 기타한대 둘러메고 개량한복을 입고서는 밝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낙천적인 인상으로 노래한다. 왠지 기인같은 도인분위기도 풍긴다. 평소에 개량 한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기도 하다. 실제 1970년대부터 친분이 있던 조영남의 회고로는 같이 술마시다가 뜬금없이 '형 지금 어깨에 귀신이 붙어있어'같은 소리도 하곤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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