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세' 김형석 명예교수
[심일보 대기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만 100세가 됐다. 김형석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철학자로서 1959년에 펴낸 철학적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과 2년 뒤에 출간된 〈영원과 사랑의 대화〉 두 책이 전국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당시 고려대 학생들도 연세대학에 가서 김형석의 철학 강의를 도강이라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김형석 교수는 90세 이후에도 매년 책을 쓰고 150회 가량의 강연을 하고 있다.

기자는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김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도 입혀지지 않는 시험문제,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론적으로 서술하시오’였다. C학점을 받았지만 그 답은 졸업 후 우연한 만남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김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관심은 남다르다.

김 교수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지인들의 얘기를 정리해보면 김 교수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다. 그는 평안도 사람이면서도 평안도 사투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지독하다고 할 만큼 대단한 우리 시대의 연설가이다.

김 교수가 어렸을 적에는 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한 평생 그는 꾸준히 수영을 하여 몸을 단련시켰다고 들었다. 그는 가정도 잘 꾸려 나가 아들과 딸이 남들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그 부인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주는 그의 사람됨은 지금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 지인의 글을 소개하지면

중략...

몇 해 전에 그가 펴낸 에세이의 제목이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였다. 그런 제목으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천진난만한 사람이다 .그 책만 아니고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책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일 내에 많이 팔렸다고 들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속담은 교수 김형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는 그 나이에도 제가 번 돈으로 제 삶을 꾸려 나가고 있고 아들, 손자를 데리고 식당에 가도 음식 값은 아버지인 동시에 할아버지가 지불한다고 들었다. 그는 야한 농담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주변은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그의 철학적인 언어에 매료되어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형교회를 운영하는 유명한 목사들보다도 그가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연희동에 있는 어떤 은행에 갈 일이 있어 가긴 했지만 발에 화상을 입어 잘 걷지 못하던 때었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있는데 김형석 교수가 창 밖에 서서 웃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차 안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전해주어 선배가 후배를 찾아준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밝은 미소를 보며 인생은 비록 괴롭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김형석의 아름다운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믿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지금도 김 교수는 여전히 강연을 다니고 책을 쓰며 꼿꼿한 자세로 노익장을 과시한다. 그런 김 교수가 지난해 8월 동아일보에 ‘文정부 2년의 성과 무엇인가? 국민이 묻는다’ 제하의 칼럼을 썼다.

개인적으로 김 교수가 정치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이같이 질문을 던졌다.

오늘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 완수를 위해 추미애 후보자를 한국당의 표현처럼 '번갯불 콩 굽듯'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지금도 지난해 쓴 김 교수의 글에 현 정부가 어떤 답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 당시의 칼럼을 제자입장에서 되새김질 하고자 적었다

文정부 2년의 성과 무엇인가? 국민이 묻는다

현 정부가 출범하고 2년여가 지났다. 그동안 국민이 기대했던 정치, 경제적 성과가 무엇이었는지 묻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설득과 변명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실정은 부정하기 힘들다. 국민들은 오히려 이전 정부 정책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대통령도 뒤늦게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부터 건설적 기반 위에 성장을 쌓아 올렸어야 했다. 사회주의적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참여의식을 주었어야 했다. 경제공동체를 적대감과 편 가르기로 흔들어 놓았다. 민노총의 경우가 보여주는 그대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전반적인 불신과 회의를 일으키고 있는 법무부 장관 임명 문제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선진 국가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되는 사태다. 청와대는 여전히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말한다. 법무부 장관은 서민의 한 사람이 아니다. 국민을 선도하고 이끌어 가야 할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최소한 ‘많은 국민이 나와 같이 살며 내가 보여주는 모범을 따라 달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공직자와 사회 지도자들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같은 사고와 사회적 행위를 해도 좋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법에는 위배되지 않았다고 해도 사회 질서에 악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지금 정부는 법만 생각하지 사회의 선한 질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학생들이 방학 중인데도 왜 촛불집회를 감행하는가. 우리는 적어도 저렇게는 살지 않고, 살아서도 안 되는 사회를 원한다는 애국적인 호소다.

필자와 같은 사람은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전 국민의 애국적인 희망이다. 거기에는 청와대 보좌진의 주장과 정책에 따르기보다 사회 지도자들의 뜻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다. 국민 전체가 야당이 아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여당 안에도 청와대 정책에 회의를 품는 사람이 있다. 정권보다 국가를 더 위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정부를 이끌어 간다면 임기 말에 무엇을 남겨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사건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은 청와대 발표보다는 동맹국인 미국 정부의 발언에 더 귀를 기울인다. 청와대에서 개별적으로 흘러나오는 발언을 들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안보와 외교의 역사적 과정을 연구하며 국제적 식견을 갖춘 사람들의 우려를 도외시하는 자세가 앞날을 더 걱정하게 만든다. 한일 관계도 그렇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우리 대통령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21세기 말쯤 되면 어떤 변화가 오겠는가. 지금의 공산정권을 완성하려는 중국은 러시아와 같은 운명에 도달하게 되며 세계 질서는 유럽, 미국과 같은 경제 정치적 방향으로 변화, 발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본이 미국과 손잡는 이유는 50년쯤 후에는 세계 역사의 발전 과정이 그 길을 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친일과 항일을 가려 편 가르기 하는 자체가 미래의 조국과 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국민감정을 항일로 몰아넣어 정치적 이득을 노린다면 애국적인 선택도 아니며 아시아 건설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 과거를 모두 해결한 후에야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는 사고 자체가 역사의 정도(正道)가 아니다. 과거는 미래의 결과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막중한 과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동포애에 따르는 ‘친북 정신’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에 대한 친북은 허용될 수 없으며 종북은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이다. 애국심을 지닌 국민은 용납할 수가 없다. 그것은 유엔이 갖고 추진시키는 세계 정책의 방향이며 인권과 인도주의의 절대 명제이다. 김일성 왕가의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의 정도를 포기한 정권이다. 유엔과 자유세계가 원하는 것은, 북한 국민을 위해 북한 정권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망스러운 길이 있다면 북한 정권 스스로가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변화를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그 과정을 위해서는 핵을 포기하고 국민들을 위해 스스로 열린사회의 길을 선택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와 같이 공산주의 사회를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공산국가가 자발적으로 그 방도를 선택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 선택은 폐쇄적인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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