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논산 파평윤씨 명재 윤증 종가 기제사(제사)상을 재현한 전시물. (사진=재단법인 아름지기 ⓒ이종근 제공)
[신소희 기자] 명절 때마다 고민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차례상 차리기이다. 형식에 얽매여 너무 고민하는 것보다는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최근 명절 상차림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가정간편식(HMR)이 차례상에 올라갈 정도다.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손수 만드는 번거로움을 즐기기엔 삶이 각박해진 탓도 있다.

조상도 섬겨야 하지만 흩어졌던 식구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절. 그 장점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차례상에 더 많은 간편식들이 올려질 판이다. 실제 제수용 가정간편식 매출은 해마다 늘고 있다. 유통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세대가 차례마저 간단하고 편한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차례상을 준비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차례상 차리기 원칙은 있는 것인가

"조상을 모시고 정성껏 모신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차려서 드리는 것이 조상한테 잡수시기에 편하겠느냐, 합리적이냐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 기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예서에 보면 기본이 나와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 조상이 계신 신주가 있는 거기서부터 시작했을 때 제일 가까운데 떡국을 놓고 모시잖아요. 그 다음에 술잔이 놓이게 되고 그 다음에는 적, 어적이나 육적이나 소적이나 적을 놓게 되고 그 다음에 반찬류 이렇게 놓게 되고 제일 끝에 과일을 놓게 되는거죠."

올바른 설 차례상 차리기에 대해 최종수 경기도 향교재단 이사장은 이같이 설명했다.

▲ 지난 18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올라온 게시글 일부를 편집한 캡쳐. 네티즌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한 네티즌은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하는 건 어느 근본 없는 놈들이 만든거냐? 집안 사정에 맞춰 간소하게 치르는 게 오히려 사치를 금하는 유교 전통에 맞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네티즌은 본인을 밀양 박씨 종갓집 아들 A씨로 소개했다.

A씨는 본인 집안의 차례상은 떡국과 나물, 김치, 떡, 술 정도로 간단하게 차린다고 소개했다. 손이 많이 가는 전이나 비싼 육적(소고기전) 등이 필수는 아니라는 취지다.

다소 도발적인 어투에도 불구하고 '글이 사이다네', '진짜 양반집은 이런거다', '이게 배운 집안이다'는 등 댓글에서는 뜨겁게 호응했다. 

그렇다면 명절마다 올라오는 '양반가 차례상', 진실은 무엇일까.

24일 뉴시스가 성균관 의례부와 양반가 종손, 전문가 등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양반가 차례상이 간소하다'는 주장은 대체로 맞는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맹강현 성균관 의례부장은 "양반가도 집안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차례에는 간소함이 전제돼 있다"며 "기제사(제사)에는 밥이나 국을 올리지만 설날 차례상은 떡국만 간단히 올려도 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퇴계 이황 17대 종손인 이치억 박사는 "차례는 간단하게 지내는 편"이라며 "음식 네 접시에 술잔 정도만 상에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파평윤씨 명재 윤증 선생은 '제사는 엄정하되 간소하게 하라,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고, 손이 많이 가는 화려한 유밀과(한과)도 올리지 말라'고 했다"며 "지금도 명재 종가에서는 떡과 유밀과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상식처럼 여겨지던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어동육서(魚東肉西)' 등 예법은 근거가 있는 말일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맹 의례부장은 "선비들 예법서에는 없는 말"이라며 "나중에 민간에서 생긴 속설로, 제사지내면서 너무 어지러우면 안 되니까 정해진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 박사 역시 "그런 내용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된 가사 노동으로 가족간 '명절 싸움'의 주범이 되는 '전'은 꼭 올려야 할까. 오히려 '예법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언까지 나왔다.

맹 의례부장은 "원래 예법에 보면 전은 기름이 튀는 게 지저분하다고 해서 꼭 활용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나와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파평윤씨 명재 선생은 '기름이 들어가는 전을 올리지말라'고 했고 이 때문에 지금도 명재 종가에서는 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진짜 양반가'들의 조언을 참고하자면 차례상은 술과 제철과일, 나물, 떡국을 기본으로 하되 형편에 맞춰 추가하면 된다.

맹 의례부장은 "술과 과일, 나물 정도가 필수"라며 "형편이 괜찮다면 고기나 떡을 추가해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사란 정성이기에 물 한그릇만 떠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최대한 정성을 다해 차리되 복잡하게는 안 해도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올해 차례상에는 "과일 몇가지와 나물, 탕, 어적(魚炙), 떡국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차례상 음식으로 "과일과 어포, 떡국, 전" 네 가지를 꼽았다.

전문가가 전통 종가댁의 고증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차례 상차림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정 교수가 명재 윤증과 퇴계 이황 등 종가댁 전통 상차림을 참고해 만든 상차림에는 '밥·국·육류·생선·나물·과일·떡' 등 6가지 종류 음식이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지막으로 '차례상 차리다가 싸우는 집들에 한 말씀 부탁한다'는 질문에 맹 의례부장은 이렇게 답했다.

 "명문가 집안에서는 남자가 시장에 가서 제수를 사오고 음식을 올리고 과일도 깎는다. 여자만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자들도 생각을 고쳐야 집안도 화합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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