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 충주시장
독일과 미국을 전전하다가 갑자기 ‘총선에 참여해서 정치판을 바꾸겠다’며 귀국한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요즘 화제가 좀 되고 있다.

안철수 정동영(이하 존칭생략) 전 대선후보는 참고 인내했으면 대통령이 될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들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안철수는 ‘이념에 찌든 낡은 기득권 정치를 심판하고 새정치’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한다. 10년전과 똑같이 자신이 '새정치'라는 것이다.

우선 그는 정치에 필요한 자질과 소양,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는거 같다. 정치적 분별력이 없어 보인다.

지금도 그는 ‘새정치의 화신’일까? 그는 호남의 전폭적인 신뢰를 져버렸다. 그는 구태정치인 못지않게 당원과 국민의 뜻에 배치되게 탈당하고 창당하고, 분당하고 또 창당을 거듭했다. 새정치가 아니라 식상한 정치를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도적으로 공간이 좀 열렸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이 통과됨으로써 다당제의 제도적 활로가 열렸다. 그가 말했던 ‘중도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한 제3의 정치세력이 설자리는 생겼다. 정치인(국회의원)으로 재기는 가능하다. 그러나 대권은 아니다.

안철수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에 승복하고, 2017년 탈당하지 않고, 문재인 후보와 정면승부를 겨루고 결과에 승복했다면, 그는 아마 한국정치의 거인이 되었을 것이다. 인내력이 부족하다. 금방 정치인생이 끝나는줄 알고 조급히 서둘렀다. 아직도 그는 50대다.

정동영은 또 무엇이 문제일까?

노무현정부의 열린우리당 시절 정동영 당의장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2004년 총선에서 그는 공천권을 100% 휘둘렀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례 한 자리만 좀 배려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동영은 욕심이 지나쳐 소위 대통령병에 걸렸다. 정확한 정세판단으로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코앞의 대통령 선거에만 집착했다. 역시 조급히 서두른게 패착이다.

정동영의 최대패착은 2007년 5월말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최후 담판이다. 노 대통령이 "정 의장, 나와 함께 전국정당 열린우리당을 지킵시다. 그러면 내가 모든 힘을 다해 정 의장을 돕겠소" 라고 했다. 정동영은 노대통령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참여정부의 2인자였던 정동영이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하는 최후의 만찬이 됐다.

그 때 만약 정동영이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들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노무현 정동영이 힘을 합쳤어도 민주진영은 분열됐을 것이다. 그래도 노대통령과 친노의 지원을 받은 정동영이 대선후보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정동영은 호남에서 표를 잃고 대선도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동영이 친노 동맹세력으로 남아 있으면, 노 대통령 사후 정동영은 친노세력의 좌장이 된다. 문재인 비서실장이 등장할 여지도 없다. 정동영은 영호남을 아우르는 통큰 정치인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2012년 대선은 정동영이 이끄는 민주세력이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에라도 반드시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정동영은 의리와 명분을 위해 고난을 감래하지 못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판단력과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안철수 정동영 뿐만아니라 故이기택, 이종찬, 이인제, 손학규 의원도 조금만 참고 기다렸으면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한들 소용없다. 다만 반면교사로 남을 뿐이다.

정치인에겐 인내심과 명분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이번이 아니면 정치생명이 끝나는줄 알고 조급한 마음에 패착을 둔다. 조금만 참고 명분을 쌓아가면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번 4.15총선을 앞두고 이번이 아니면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이합집산이 예상된다.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는 정치인이 수없이 탄생할 것이다. 안철수와 정동영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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