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경석 원장
미국 사람들이 약을 많이 복용하게 된 것은 제약 회사의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편적인 예로 미국에서 많이 유통되는 대부분의 잡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광고가 바로 약물광고다.

2016년 5월 16일자 《타임》을 보면 표지에 지카바이러스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지카바이러스가 재앙을 불러 일으‘kill’지도 모른단다. 아니, 인류가 온갖 바이러스와 모기의 공격에도 꿋꿋하게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새삼 이들을 공격하는가? 위생 환경이 좋고 면역력이 튼튼하면 바이러스 몇 마리 들어와도, 모기약을 공짜로 엄청 먹게 생겼다.

이런 걸 표지에 실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표지를 넘기니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주사약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먹는 약도 아니고 주사약 광고를 버젓이 한다. 콜레스테롤 높은 것하고 심혈관 질환하고 아무 상관없다는 연구가 쏟아져 나와도 들은 척조차 안 한다. 다른 위험 인자가 있을 때 콜레스테롤이 높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식습관과 운동으로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

이런 걸 첫 광고로 대문짝만 하게  실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잡지 중간에는 작은 기사로 미국에서만 1년에 의료 과실로 사망하는 사람이 25만 1454명이고, 암과 심혈관 질환에 이어서 사망 원인 3위라는 연구 결과가 실려 있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작은 기사로 실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잡지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에서도 엄청 많은 약물광고가 나오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뿐만 아니라 처방전이 필요한 약까지도 텔레비전에서 직접 광고한다. 이런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뉴질랜드뿐이다.

물론 복용 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전문가와 상담하라는 글귀가 나오기도 하지만 화면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한 번 나오고, 그조차 빠르게 지나가버려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부작용을 음성으로 알려주기도 하는데 워낙 말이 빨라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제약 회사가 1년에 약 85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인데 여기서 광고비로 지급한 돈이 약 270억 달러로 전체 약품 개발과 연구비의 두 배 정도 된다. 제약 회사의 영향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매체 광고에만 그치지 않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와 의료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을 면밀히 관리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제약 회사에는 약 7만 명 이상의 영업 사원이 있는데 이들이 미국 내 70만 명의 의사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그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 미 의회에는 535명의 의원이 있는데 의회에서 활동하는 제약 회사 로비스트가 약 1400명이다. 의원 한 명당 세 명의 로비스트가 활동하는 셈이다. 일부 제약 회사에서 의사들의 처방 약 구입률을 높이려고 전직 치어리더 출신의 섹시한 여성들을 영업 사원으로 채용한다는 뉴스는 이미 나온 지 오래다.

무조건 약물에 의존하여 치료하려는 의사도 문제지만 이를 관리 감독하는 미 보건 당국 역시 이런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판매되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회수 조치된 약물들은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받은 것들이었다.

결국 일단 승인부터 해준 뒤 부작용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판매 금지를 내리고 회수 조치하면 된다. 물론 그동안 엄청난 수익을 올린 제약 회사는 자신들에겐 껌값에 지나지 않는 보상비 몇 푼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면 그만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허가를 내준 보건 당국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의회의 제재를 받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약 회사 간부 출신이 보건 당국 책임자로 가고, 보건 당국 책임자 출신이 제약 회사 간부로 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 발령’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제약 회사가 보건 당국, 의과대학, 미디어, 과학계를 좌지우지하며 무차별적인 마케팅을 벌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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