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 지난 13일 한 30대 한의사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했고, 그의 가족 또한 모두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 가운데, 사건이 벌어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된 윤(34)씨의 자택 안방에서는 역시 한의사인 부인 B씨와 5세 아들, 1세 딸의 시신도 함께 발견됐다. B씨와 두 자녀의 목 주위에는 압박 흔적이 확인돼 경찰은 A씨가 이들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투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택에서는 A씨가 작성한 A4용지 8장 분량의 유서도 발견됐다. 여기에는 "아빠가 잘못된 결정을 내려 미안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작년 12월 A한방병원을 열었다. 아내가 병원장이던 인천 'B한방병원'을 확장해 새 지점을 낸 것으로 보인다. A병원은 보증금 5억원에 월 임대료 약 2500만원이었다.

A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윤씨는 새로 개업한 병원 인테리어에 9억원을 들였다. 자금 상당 부분은 대출로 조달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없던 빚 10억여 원이 생기면 누구든 부담스럽겠지만, 윤씨가 채무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윤씨 아버지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이 인테리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병원 관계자는 "(사건이) 단순 채무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사건 전날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정시 출근하고 퇴근했다고 한다. "오전 9시쯤 출근해 외래 진료를 보고 오후 7시쯤 진료를 마치고 셔터를 내리고 집에 갔다"는 게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병원 관계자는 "사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병원 직원들도 "원장님이 그럴 분이라고 생각 못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병원은 하루 평균 외래 진료 환자 10명 정도에 입원 환자 20명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직원은 약 20여 명 정도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병원인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윤씨는 평소 병원 직원들에게 가족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병원 직원은 "원장님이 같은 대학교 한의학과 7세 차이 연상연하 CC(캠퍼스 커플)에서 결혼까지 골인한 걸로 안다"고 했다. 책상 위에 가족사진이 있지는 않았고, 직원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전문가들은 가족에 대한 가장의 지나친 책임감에서 비롯된 '가부장적 심리'라는 배경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씨 유가족은 경찰 조사에서 "아들이 지난해 12월경 개원한 한의원 인테리어 등으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유서에서 말한 '잘못된 결정'은 한의원 개원이나 그 과정에서 비롯된 비용, 부채 등 문제일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장의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도 일단은 다른 자살 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원인과 우울증, 술 등 복합적인 부분이 작용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가족에 대한 잘못된 책임감이 투영된 가부장적 심리가 심리적 배경 중 하나로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동현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뉴시스에 "가장으로서의 지나친 책임감 내지 '자녀에 대한 생사여탈을 쥘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합쳐져서 살해 후 자살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면서 "부부갈등 문제, 자녀들을 자기의 권한으로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생각 등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진 나사렛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특성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도 가부장적인 특성, 자녀들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다 져야한다는 것들이 있다"면서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는 심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이들이 어린 시기이기 때문에 자녀를 살해하는 행위가 더 쉬웠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초등학생 이하인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고등학생이나 20대면 이미 성장했기 때문에 살해 후 자살이 일어나기 매우 힘들다"고 언급했다.

안 교수도 "(자녀가) 중·고등학교에 넘어가면 자기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하거나, 학교나 학원을 가서 집에 없거나, 저항을 해서 도망나오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면서, "그런데 유아기나 영유아기나 초등학생이거나, 부모가 아이를 살해할 때 저항이 어려운 상황이라 더 문제가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사건과 같은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일반적인 자살 사고 중 흔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백 교수는 "국내에서 자살 사건은 1년에 1만3670건 정도인데 이중 가족 살해 후 자살이 20건 정도이다. 비율로 따지면 한 0.1~0.2%정도"라며 "그런데 우리나라가 특별히 높은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해외에서도 평균적으로 0.1% 정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