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세월호 참사·새벽경기 삼중고

▲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요르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암만의 한 임시 천막카페에서 사람들이 독일-포르투갈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우리나라 월드컵 본선 3경기가 모두 새벽~이른 오전 시간에 배치돼 '월드컵 특수'를 누렸던 업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경기 침체와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분위기도 조용한 월드컵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국가대표팀 첫 본선 경기를 이틀 앞둔 16일 기자가 찾은 월드컵 용품 도소매 상점은 평소와 다름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 인근에는 남대문 시장 의류상점이 모여있다. 이 중 월드컵 티셔츠를 판매하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골목 안쪽에 위치한 한 상점에서 빨간색 티셔츠를 판매하는 곳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남대문 시장 전체를 둘러봤지만 월드컵 티셔츠와 응원용품을 파는 상점은 5곳 정도에 그쳤다.

월드컵 티셔츠만 판매하는 스포츠 의류 전문점을 찾는 손님도 눈에 띄게 적었다. 10분 동안 외국인 손님 한 무리가 지나갈 뿐이었다. 중년 남성으로 보이는 주인은 상점 밖 의자에 3~4분 동안 앉아있다가 아예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남대문 시장에서 13년째 티셔츠 판매를 하는 P사 사장은 "2002년부터 이 장사를 했는데 그때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지난 2006년과 2010년에도 장사가 잘 됐다"며 "올해는 조용하다. 가끔 4년이나 8년 전에 재미를 본 지역 상인들이 가끔 사갈 뿐, 일반 손님들은 완전히 반응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이어 "오늘까지의 매출이 4년 전의 10%도 안 된다"며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큰 듯하다. 모레가 러시아전이니 내일부터는 조금 팔릴 것 같다"고 말했다.

남대문 시장에서 응원용품을 판매하는 김경수(46)씨는 "월드컵 티셔츠는 세월호 참사의 타격이 매우 크다"며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분위기상 매출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탄했다.

김씨는 "제일 큰 원인은 세월호 참사 같다"며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장사가 잘 되면 좋지만,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안타까운 사고로 이런 타격을 받았다는 게 마음이 아프고 착잡하다"고 말했다.

인근 H사 사장은 "매출이 4년 전의 10분의 1도 안 된다"며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명씩 오는데, 그나마도 가격을 물어보고 비싸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늘 (매출이) 움직여야 하는데 안 움직인다"며 "광화문에서 응원한다니까 그나마 기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광화문은 시청 앞 응원에 못 미친다"고 덧붙였다.

치킨집과 호프집 등 외식업계의 표정도 밝지 않다. 이들을 울상짓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경기 시각이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경기는 오전 7시(18일·러시아전), 오전 4시(23일·알제리전), 오전 5시(27일·벨기에전)에 열린다.

저녁이나 늦은 밤 경기가 열리면 밖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이번 월드컵은 예외다. 설령 경기를 관람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문제다. 대부분의 치킨집과 호프집은 오전 7시 이전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영업 시간을 바꿔서라도 장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예 월드컵 특수를 단념하고 연장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곳이 대다수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치킨집 종업원 A씨는 "우리 상점은 오전 7시가 원래 영업 시간이 아니라 장사를 하지 않는다"며 "월드컵 경기가 있으면 영업 시간을 조정해서라도 장사를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아침부터 치킨을 먹으러 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A씨는 "경기 시간이 새벽 2시 정도만 됐어도 영업을 했을텐데 이번에는 모든 경기가 해 뜨는 시간대에 열린다"며 "영업을 해봤자 기대한 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장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B씨는 "원래 12시간만 영업을 하는데 18일에는 24시간 동안 영업을 할 예정"이라며 "특별히 그날 매출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판매할 음식 양도 영업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인 2배만 준비한다"고 말했다.

치킨과 한쌍을 이루는 맥주 매출도 큰 기대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4년 전 월드컵이 열린 2010년 6월 성장률은 6.67%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달 성장률(0.64%)과 다음해 같은달 성장률(-1.95%)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업계 측은 이 같은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지 않았다.

O사 홍보팀 관계자는 "올해는 극적인 매출 증가를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전에 미리 월드컵 분위기도 조성돼야 하는데 세월호 사고 때문에 늦게 시작됐고, 우리나라 경기도 새벽·아침에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편의점도 월드컵 관련 매출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시민들이 조금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간단한 먹거리를 판다는 장점 때문에 다른 업종보다는 타격을 덜 받겠다고 예상할 뿐이었다.

G사 홍보팀 관계자는 "편의점에 설치된 텔레비전으로 경기 생중계를 하는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며 "경기 시간대가 저녁이면 매출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른 아침대라서 특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S사 관계자는 "이번에는 거리응원에 사람이 몰리지 않을 것 같아서 예전과 매출 양상이 달라질 것 같다"며 "예전에는 강남과 시청, 광화문 인근 점포에 매출이 높았다면 이번에는 주택가 지역 매출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새벽 시간대에 경기를 하다 보니 최근 3일 동안 편의점에서 파는 조각 치킨 매출이 늘었다"며 "과자나 커피, 삼각김밥 등 분식거리 매출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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