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지수가 장중 4%대로 떨어진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보이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1908.27)보다 20.30포인트(1.06%) 내린 1887.97에 출발했다.
[이미영 기자] 한국거래소가 12일 오후 1시 4분 37초 유가증권시장에서 프로그램 매도호가를 1분간 효력 정지시키는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2011년 10월 4일 오전 9시 6분 이후 8년5개월만이다.

사이트카는 유가증권시장업무규정 제16조에 따르면 코스피200선물가격이 기준가격 대비 5% 이상 하락(또는 상승)해 1분간 지속되면 프로그램 매도호가 효력이 5분간 정지되는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와 유사한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주가지수 선물시장을 개설하면서 도입하였는데, 선물가격이 전일종가 대비 5% 이상(코스닥은 6%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해 1분간 지속될 때 발동하며, 일단 발동되면 발동시부터 주식시장 프로그램 매매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된다.

그러나 5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해제되어 매매 체결이 재개되고, 주식시장의 후장 매매 종료 40분 전(14시 50분) 이후에는 발동할 수 없으며, 또 1일 1회에 한해서만 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사이트카'라 하나?

고급 세단과 스포츠카를 주력으로 하는 영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는 의외의 뿌리를 가졌다. 영국의 롤스로이스와 독일의 BMW가 항공기 엔진사업에, 프랑스 푸조가 금속공방에, 스웨덴 사브가 전투가 제작에 뿌리를 뒀다면 재규어는 모터사이클의 측면에 설치하는 '사이드카' 공방이 그 시작이었다.

▲ 재규어 로고
재규어는 윌리엄 라이온스(1901~1985)와 윌리엄 웜슬리가 1922년 영국 랭커셔주의 항구도시 블랙풀에 세운 '스왈로우 사이드카'라는 이름의 공방에서 시작됐다.

윌리엄 라이온스는 1901년 영국의 지휘자이자 피아노 조율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중등교육 과정을 마친 후에는 낮에 자동차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기술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1919년부터는 선빔 자동차 판매를 시작했고, 1921년 할리데이비드슨 바이크에 장착하기 위한 사이드카를 구입하기 위해 선빔 전시장 바로 옆으로 이사온 사이드카 제작자 윌리엄 웜슬리를 만나게 됐다.

같은 이름을 가진 라이온스와 웜슬리는 취미도 같았다. 이들은 모터사이클에 흠뻑 빠져 의기투합했고 1922년 재규어의 전신 '스왈로우 사이드카'라는 공방을 열었다.

1925년 영국의 국민차로 불린 소형차 '오스틴 세븐'을 구입한 라이온스는 이 차의 디자인과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오스틴 세븐 섀시에 맞는 새로운 바디를 제작, '오스틴 세븐 스왈로우'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 제품은 175파운드라는 저렴한 가격과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스왈로우는 이후 파이트 509, 스위프트 텐, 스탠다드 나인 등의 바디를 제작, 판매했다.

특히 스탠다드사는 스왈로우 바디에 만족해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스탠다드사의 샤시와 스왈로우의 바디로 만들어진 'SS1'은 영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귀족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벤틀리를 닮았지만 가격은 1932년 당시 310파운드로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자간 불화가 발생했다. 라이온스는 공격적으로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성장시키려 했지만 웜슬리는 본업인 사이드카 제작에 전념하자는 입장이었고, 끝내 회사를 떠났다.

윌리엄스는 웜슬리가 떠난 후 스왈로우 사이드카의 이름을 SS자동차로 바꾸고 1935년 'SS재규어'를 탄생시켰다. 당시 라이온스는 참신하고 새로운 이름을 원했으며, 넬슨 광고 회사는 새, 물고기, 포유류가 들어가는 독특한 이름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라이온스가 선택한 이름은, 고양이 같은 분위기에 우아함과 민첩성이 반영되어 있는 재규어였다.

 
 'SS재규어'는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로, 고급스러운 외관이 특징이었다. 이듬해인 1936년에는 'SS100'이라는 신차가 출시됐다. 최고속도가 100mph(약 161km/h)를 넘는 차라는 의미였다.

2차 세계대전 후 SS의 이름은 '재규어'로 바뀌었다. 'SS'가 악명 높은 독일 나치 친위대(슈츠슈타펠)의 약자와 같았기 때문이다.

재규어는 연구팀을 꾸려 'XK엔진'을 탄생시켰다. 이 엔진은 1948년 탄생한 'XK120'과 '마크VII'에 탑재됐다. 'XK120은 최고속도가 120mph(약 193km/h)를 넘는다는 의미였지만 영국 언론으로부터 온갖 조롱을 받았다. 한 매체는 "120mph가 되기 전에 차가 먼저 고장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라이온즈는 차의 성능을 증명하기 위해 벨기에의 자베크에서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성능 시연에 나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속도가 무려 132mph(약 213km/h)에 달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XK120은 'XK 시리즈'의 효시가 됐다. XK140, XK150 등 XK시리즈로 처음 경주에 나선 재규어는 C-타입과 D-타입의 경주차를 별도 제작했으며 C-타입은 1951년과 1953년에, D-타입은 1955년에서 1957년까지 3년 연속 르망24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재규어는 1990년 XJR-12까지 총 7회에 걸친 르망24시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60년대는 재규어의 황금기였다. 항공기 엔지니어 출신인 말콤 세이어의 스타일링으로 탄생한 E-타입은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 안락한 승차감으로 인기를 구가하며 10여년간 7만2500여대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1960년대 영국 자동차업계의 출혈경쟁이 거세지며 재규어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재규어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66년 브리티쉬 모터 코퍼레이션(BMC)에 합병됐다. 2년 후에는 정부의 자동차 산업 통합 조치로, 오스틴·모리스·란체스터·MG·로버 등과 함께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일원이 됐다.

1985년에는 창업주 라이온스가 사망했고, 4년 뒤인 1989년에는 미국 포드 자동차가 랜드로버와 함께 재규어를 인수하며 고급 자동차 브랜드 그룹인 'PAG'의 일원이 된다. 재규어는 'PAG' 편입 후 포드의 기술력, 플랫폼을 활용해 빠르게 신모델 개발에 나섰다. X-타입과 S-타입 등이 당시 탄생한 모델들이다.

X-타입과 S-타입은 1990년대 재규어에 '제2의 전성기'를 선사했다. 하지만 2000년대 재규어는 또다시 침체기에 들어섰고, 포드는 2000년대 후반 글로벌금융위기 후 구조조정에 나서며, 재규어를 인도 타타자동차에 넘겼다.

재규어는 타타에 인수된 후 이안 칼럼 디자이너를 영입,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구사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신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15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F-페이스가, 2016년에는 순수전기차 'I-페이스'가, 2017년에는 'E-페이스가 각각 출시됐다. 재규어는 2016년 10월 재규어의 레이싱 헤리티지와 퍼포먼스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고성능 EV 파워트레인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국제자동차 연맹(FIA)가 주관하는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E 챔피언십 세 번째 시즌을 통해 글로벌 모터스포츠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