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재판을 하다보면 사소한 것에도 끙끙 앓는 사람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재판장이 큰 의미 없이 내뱉은 한마디에도 당장 재판이 어떻게 되는 것 아니냐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래서 별 것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해주어도 좀처럼 걱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물론 보통 사람이 송사에 휩싸인다는 그 자체가 큰 고통이요 근심거리이긴 하지만, 어차피 근심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면 사소한 것은 놓아버리고 일상의 삶을 계속해야 할 것 아닌가?

샤르마 박사는 사업가들이 갖고 있는 근심의 세계를 분석해보니 그 중 54%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것이요, 26%는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과거 행동에 대한 것이요, 8%는 그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견해나 비판에 대한 것이요, 4%는 그들이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고, 단지 6%만이 그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실제적인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샤르마 박사는 걱정거리는 매일 저녁 30분의 고정된 시간에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걱정거리를 잊어버리라고 한다.

랭크라는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샤르마 박사의 권고처럼 일주일 내내 고민거리에 잠겨 있기보다는 아예 하루를 택하여 집중적으로 고민하기로 하고는, 수요일을 고민의 날로 정하였단다. 그리하여 랭크는 고민거리가 떠오르면 즉시 종이에 적어 고민 상자에 넣었고, 수요일이 되자 고민 상자를 열어 고민 종이를 꺼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분명 상자 안에 고민거리를 써넣을 때는 고민거리요, 근심거리였는데, 정작 고민의 날 이를 꺼내어 고민하려고 하니 더 이상 고민거리로 다가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지내놓고 보면 ‘그 때 왜 그런 사소한 것으로 걱정을 하였던가’ 하는 경험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 당시에 뭘 걱정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근심을 내려놓자.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의 저자 칼슨 박사는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전전긍긍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인생에 맞서 싸우려 들기만 할 뿐,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느긋해질 줄은 모른다고 한다.

그래 칼슨 박사 말처럼 근심을 내려놓고 느긋해지자.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마태 6:34). 토머스 칼라일도 말한다.

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을 영어로 하면 ‘프레즌트(present)’인데, 이 ’present’의 또 다른 뜻은 선물이다. 귀하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선물! 이 선물을 근심하느라고 날려버리지 말자. 문득 찬송가가 흥얼거려진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이 글에 나오는 인용은 송봉모 신부가 쓴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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