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국회의원 선거(4.15 총선) 영등포구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후보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김민호 기자] 민주당은 지난 2월 26일 오후 늦게 4·15 총선 1차 경선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정치 1번지 여의도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을에 도전한 김민석 전 의원은 여기서 21대 총선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 지역의 현역 의원이자 김 전 의원의 서울대 사회학과 선배인 신경민 의원을 누른 것.

김 전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하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만나 제1야당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92년 14대 총선이 그의 첫 국회의원 선거 출마였다. DJ의 지원으로 서울 영등포을에 공천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첫 도전이었지만 상대 후보인 당시 여당 민주자유당의 나웅배 후보에게 단 200표 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어 15·16대 총선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DJ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나서 초·재선에 잇달아 성공했다.

15대 총선에서는 당시 상대 후보가 탤런트 최불암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본명 최영한으로 신한국당 후보로 나선 최불암을 두고 김 전 의원은 "김민석을 국회로, 최불암은 무대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16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대통령 후보 피선거권(만 40세)이 없는 38세의 나이에 이미 당내 대선주자로 불리기도 했다. 386 세대의 대표주자처럼 불리면서 승승장구했다.

다만 이후 2002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16대 국회의원을 중도 사퇴한 후 국회로 오래도록 복귀하지 못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이명박 후보와 붙었지만 낙선하고 지방선거 직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영등포을에 다시 도전했지만 권영세 당시 한나라당 후보(현 용산구 당산)에게 패했다. 2004년에도 17대 총선에서 이웃 영등포구 갑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김 전 의원에게는 '철새' 꼬리표도 따라 붙었다. 16대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다. 당시 김 전 의원은 같은 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주춤하자 대선을 약 두 달 남기고 당적을 바꿨다.

만 32세에 국회에 입성했던 청년이 중년이 돼 여의도로 돌아오기까지 강산이 두 번 변했다.

김 당선인은 월간중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돌아와서 좋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8년 전 의원직 사퇴 뒤 '야인생활'에 대해 "18년…언제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싶어. 1~2년 전부터는 이런 시간 겪어보길 잘했다는 생각 들어. 서울시장 낙선 후 곡절 많아. 김민석 끝났다는 말까지. 농담처럼 바닥까지 갔다가 지하실까지 떨어졌다가…"라고 회고했다.

이어 왜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려 했나는 질문에는 "정치를 할 때나 안 할 때나 나는 항상 나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꾸준히 국가 비전을 공부해왔다. ‘과연 다시 정치를 하는 게 맞는지, 꼭 내가 필요한 건지’ 판단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지난 세월에 대한 복기(復碁)도 마쳤고, 돌아와서 다시 정치를 할 만큼 나름대로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어떤 정치를 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젊어서는 빨리 가는 정치를 했다면, 이제는 바로 가는 정치를 하려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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