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인근에 30일 마련된 유가족 대기 장소에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스1 캡쳐]
[신소희 기자]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로 숨진 희생자의 신원이 속속 확인되면서 이들과 유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설비ㆍ도장ㆍ방수 등 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은 거의 다 한 가정을 건사하던 평범한 가장들이었다. 이들 38명의 사망자들은 가족을 살뜰히 챙기던 친근한 이웃이었다.

30일 다수의 언론에 실린 이들의 사연들은 우리 모두를 가슴 시리게 했다.

이날 한국일보에 따르면 문모(52)씨는 20년간 전국 방방곡곡의 현장을 다니면서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의 점심 안부를 물었다. 거친 일을 하면서도 집에선 가족이 걱정할까 힘든 내색 하나 않던 남편이다.

이날 새벽에도 문씨는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 현장으로 출근했다. 여느 때처럼 "여보, 점심 먹었어?"라고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퇴근은 하지 못했다.

저녁 7시쯤이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은 싸늘한 주검이 됐다. 문씨가 일하던 물류창고 지하 2층에서 오후 1시 32분쯤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켜 3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문씨는 지상 2층에서 설비 공사를 책임지던 현장 관리자였다. 물류창고 전체 6개 층 가운데 지상 2층에서는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 문씨를 포함해 18명이 숨졌다.

신원 확인이 늦어지면서 아내 김씨는 30일 새벽까지 화재 현장 인근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남편이 평소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 집에 와서도 ‘우리 진우(가명), 우리 현석(가명)이’ 하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다같이 떠나버렸다. 마지막에 다들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며 흐느꼈다.

옥상에서 판넬 공사를 맡았던 조모(34)씨도 그랬다. 충북 음성군에서 홀로 중학교 3학년 딸을 키우던 조씨는 매일 1시간씩 통근하며 착실히 일했다. 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끼니 값도 아꼈다.

조씨의 아버지는 불편한 다리에도 이날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화재 현장으로 달려와 아들의 소식을 구하고 다녔다. 그는 “부인과 아들, 손녀딸이랑 넷이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냐”며 애통해 했다.

 

▲ 30일 오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머니투데이에도 또 다른 사연이 실렸다. 김모씨(26)는 이번 참사로 혼인 신고 1달 만에 남편 임모씨(29)를 잃었다. 임씨는 이 현장에서 일한지 1달 여 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씨는 “(어머님이 임씨를) 홀몸으로 힘들게 키웠는데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항의했다. 임씨의 모친은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40대 아들을 먼저 보낸 노부부는 “아들이 죽은 것은 확인했는데 어느 장례식장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탄식했다.

큰 아들의 비보를 듣고 손자와 함께 안산에서 달려온 할아버지는 “얼마 전 아내를 보내 60대 아들과 둘이 살고 있었는데, 이제 아들마저 떠나 보냈다”고 말했다.

부자(父子)가 함께 일하다 참변을 당한 가족도 있었다. 이모(34)씨는 아버지(61)와 지상 2층에서 설비 공사를 하다 불이 번지자 창문을 통해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아들은 중상을 입고 경기 수원시의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아버지는 30일 오후 2시까지 소재 및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들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버지의 생사를 계속해서 물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 구조가 끝나지 않아 아들은 아버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수술 이후 의식을 찾고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아들 이씨의 이모는 “의식을 찾고 깨어난 아이에게 ‘아버지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화재 희생자 중에는 객지에서 홀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3명도 포함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사망자 중 중국인 1명과 카자흐스탄인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며 “가족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 불이 나 38명이 숨진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 시공을 맡은 ㈜건우 대표이사가 30일 화재 참사 유가족이 대기하는 모가실내체육관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있다.
한편 30일 오후 2시 물류창고 건너편에 있는 이천시 모가체육관 단상에 시공을 맡은(주)건우 대표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공사 대표가 나서 사고 경위와 대책을 설명할 것이라는 예고에, 점심도 거른 채 기다렸던 유가족 수십여 명은 차분한 모습으로 이 대표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화재 발생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시공사 대표 이씨는 1분 여를 단상에 엎드린 채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하다 회사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황급히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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