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미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사과의 뜻을 밝히는 한편 자녀들에게 경영을 승계하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삼성 내에서 '무노조 경영'은 없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6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권 승계 문제 등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검은색 정장에 줄무늬 넥타이를 맨 어두운 표정으로 회견장 내 단상 앞에 섰다.

이 부회장은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법과 윤리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와 공감하고 소통하는데도 부족함이 있었다.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따갑다"라며 "저의 잘못이다.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단상 옆으로 나와 한 차례 고개 숙여 사과하고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삼성의 현안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한다"라며 경영권 승계 문제와 노조 문제와 관련해 언급했다.
 
우선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관해 비난받았다"라며 "최근에는 승계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한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라며 "법을 어기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 받을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 가치 높이는 일에 집중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처음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기회에 한 말씀 더 드리겠다"라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힌 것을 두려워 해왔다"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그 이유로 "경영 환경도 녹록치 않은데다가 제 자신이 제대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를 언급한다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노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삼성의 노사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라며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어 "그동안 삼성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라며 다시 한 번 단상 옆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라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전하겠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 그래서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시민사회 소통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라며 "기업 스스로가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체로 경청하겠다. 낮은 자세로 먼저 한 걸음 다가서겠다"라고 다짐했다.

특히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다"라며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 내리도록 하겠다. 저와 관련 재판이 끝나도 준법위는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 노조 문제, 시민사회 소통 사안 등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지난 2월5일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 주요 계열사들의 준법경영을 감시하는 독립기구다.

당초 '사과'의 시한은 준법위의 권고일을 기준으로 30일 이내인 지난달 10일까지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상경영체제 등을 고려한 삼성 측의 요청으로 회신 기한은 한 달 더 연장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지난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5년 만이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설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코로나19 영향 뿐만 아니라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뿐만 아니라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항소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항소심 등도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이 때문에 이날 이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최근 삼성은 과거 사안에 대한 잇단 사과를 통해 '준법 경영' 준수 차원뿐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기 위한 크고 작은 변화를 꾸준히 실천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은 앞서 지난해 8월 이 부회장 파기환송 선고 직후 "과거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업 본연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어 지난해 12월 노조 와해 혐의 유죄 판결, 올해 2월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 무단 열람에 대해서도 공식 사과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삼성을 둘러싼 환경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라며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 룰이 급변하며, 위기는 항상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다 IT업 특성으로 보다 전문성과 통찰력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라며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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