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N 캡쳐
[정재원 기자]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건립 후 21개월 만에 잿더미가 됐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 사흘만이다.

16일 오후 2시 49분쯤 북한 개성공단 인근 남북연락사무소에서는 이날 폭음과 연기가 관측된 직후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16일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설치된 일종의 외교공관. 사무소 건물은 2005년 개소했던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보수하는 방식으로 건립됐다. 보수 예산은 97억8 000만 원이었다.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처음 세울 때 공사비 80억 원까지 합하면 모두 177억여 원이 투입된 셈이다. 여기에 운영비도 100억 원 이상 든 것으로 전해졌다.

설치 당시 남북은 소장을 포함해 각각 15~20명을 파견하기로 했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에는 '연락사무소는 쌍방에서 소장을 포함해 15~20명 정도로 구성하고 쌍방이 합의에 따라 필요한 인원을 늘릴 수 있으며, 사무소 운영을 위한 보조인원을 별도로 둘 수 있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에 따라 우리측은 통일부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산림청 등 유관부처 관계자를 30명까지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설립 후 연락사무소 소장회의가 매주 1회꼴로 열렸지만 지난해 2월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올 1월부터는 연락사무소 운영이 아예 중단됐다.

▲ 2018년 9월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남측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참석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 단계 도발은

한편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속에 포함됐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실행하면서 그간 김 제1부부장이 예고했던 도발이 실제로 이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첫 담화에서 "(대북전단에 대한) 남측의 조치가 없을 경우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쓸모없이 버림받고 있는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있어야 시끄럽기밖에 더하지 않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김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관심은 북한이 어떤 행동을 보일까이다. 담화에서 언급된 대로 개성공단 철거,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이 다음 수순으로 예상된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군사행동 지휘를 위임받음으로써 군 관련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16일 공개보도에서 "우리는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와 대적관계부서들로부터 북남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해 전선을 요새화하며 대남군사적 경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행동방안을 연구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북측이 언급한 남북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는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장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됐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 군인들이 총기를 다시 들고 등장할 수 있다. 아울러 남북 합의하에 파괴됐던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를 다시 설치하는 등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남북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를 좀 더 넓게 해석하면 남북간 협력에 따라 수년간 사업이 진행되고 비무장화됐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 등에 군 병력을 주둔시키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공개보도 중 '지상전선과 서남해상의 많은 구역들을 개방하고 철저한 안전조치를 강구해 예견돼 있는 각계각층 우리 인민들의 대규모적인 대적삐라살포투쟁을 적극 협조할 데 대한 의견도 접수했다'라는 문구는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비무장지대와 서해상에서 군사 행동을 재개한다는 의미로 본다.

북한이 9·19 군사합의에 따라 중단됐던 군사분계선 일대 군사연습, 사격훈련, 항공기 비행 등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포신 덮개가 제거되고 포문을 다시 열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이 비무장지대와 서해상에서 대남 전단을 뿌리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북한 어선들 수척이 삐라를 뿌리기 위해 북방한계선(NLL)에 접근하고 넘기까지 한다고 가정해본다. 이때 뒤쪽에는 북한 경비정이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 거기에 인근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을 꺼내놓은 상태라면 어떨까"라며 "북한군이 아닌 북한 주민(실제 자발적인 주민일 가능성보다 주민처럼 위장한 군인일 가능성)이라면 우리가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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