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원순 시장의 유서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 받는 것을…

[심일보 대기자] 이 글은 '오마르 워싱턴'이라는 사람의 글이다.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아어,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완성한 후 스케치북 한쪽에 쓴 글이다. 그의 나이 87세 때이다.

오늘 박원순 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함께 삶을 반추해 볼 만한 좋은 글이란 생각이다.

어쩌면 박 시장의 안타까운 죽음은 필자가 말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오늘 서울시장 공보특보 이민주은 출입기자들에게 드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글일 듯 싶다면서 "고인은 평생의 삶을 사리사욕 없이 공공에 대한 헌신으로 일관해 왔지만, 정치인-행정가로의 길로 접어든 이후 줄곧 탄압과 음해에 시달려 왔다. 사모님과 자녀들도 공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고인이 사회적 약자가 진정으로 보호받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필생의 꿈을 미완으로 남겨둔 채 떠난 상황에서, 이제 편히 보내드리면 좋겠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지 않도록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특보의 당부처럼 남의 이들의 숙제는 '편히 보내 드리고' (언론의)추측성 기사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좀 더 배웠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은 쉽게 가셔지지 않는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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