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권 전 교수
[김민호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속내를 털어놨다. 또 운동권 출신 세력을 향해 "어느새 잡놈이 된 걸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시장은, 내가 믿었던 마지막 사람이라 내게도 충격이 컸다"며 "나를 포함해 운동권, 그렇게 숭고하고 거룩하지 않고 우리들도 어느새 잡놈이 됐다"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운동권이 '도덕', '윤리', '명예'를 모두 팽개쳤다고 장탄식했다.

그는 운동권 출신들의 최대 자부심이 '도덕적 우위'였지만 그 동안 이 사회가 넘치도록 보상해 왔고 운동권들도 권력화, 속물이 됐기에 이젠 어떤 우위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다 우리가 좋아서 한 것으로 누가 하라고 강요하거나 누가 희생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며 "그것을 훈장으로 내세우지 마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운동이 '경력'이 되고 '권력'이 된 지금, 명예 타령하지 마라"면서 "당신들 강남에 아파트 가졌고, 인맥 활용해 자식 의전원 보냈고, 운동해서 자식들 미국에 유학 보냈고, 청와대·지자체·의회에 권력 가졌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검찰도 가졌고, 곧 사법부도 가질 것이고 그 막강한 권력으로 부하직원들 성추행까지 하고 있잖아요"라며 "이미 가질 건 가졌는데, 뭘 더 바라는가"고 이른바 586운동권 세력에 맹폭을 가했다.

따라서 진 전 교수는 "과거에 무슨 위대한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지 마라"며 "이 사회는 넘치도록 보상했고, '명예'를 버린 건 당신들 자신이기에 자신들이 내다버린 명예를 되돌려 달라고 사회에 요구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해당글 전문이다.

언젠가 칼럼에서 대통령직의 '윤리적 기능'에 대해서 얘기한 적 있지요? 이미 안희정 모친상 때 예고된 사고입니다.  그때  말끔하게 개념적으로 정리했어야 합니다. 공적 추모와 사적 추모는 구별해야 한다고. 조화를 보내야겠다면 공적 직함이 아니라, 사적으로 보냈어야 한다고. 그렇게 정리를 하고 넘어갔더라면, 이런 일로 다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지는 않았겠지요.

나라가 두 쪽이 났다는 것은 곧 사회에서 누구나 합의하는 윤리의 보편적-객관적 기준이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무너뜨린 것은 공사구별을 못하는 대통령 이하 현 정권이죠.  그 결과 공무라는 뜻을 가진  '공화국'이 친문, 친여 패밀리의 사무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장례의 형식은 사회의 보편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결정돼야 했습니다. 그렇게 안 하니 나라가 쪼개지는 겁니다.

추모냐 조사냐를 놓고 싸울 필요 없습니다.  둘이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게 아니니까요. 아무리 나쁜 짓을 한 사람일지라도 사적 친분이 있는 이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이 나라 시민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한 분이니, 사적으로 추모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일을 공적 차원에서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가 '공'을 무너뜨린 겁니다.

진상을 밝히는 것은 공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단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떤 메카니즘으로 인해 가능했는지 알아내 재발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런 사건을 처리하는데에 필요한,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합의된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의 합의된 기준을 세우고, 그것으로 무너진 정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추모의 염으로 조사의 필요를 부정할 필요도 없고, 조사의 필요로 추모의 염을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적으로는 추모를 하되, 공적으로는 사건을 공론화하면 됩니다. 추모를 한다고 해서, 혹은 추모를 못 하겠다고 해서 비난할 일 아닙니다. 그건 개인의 판단의 영역에 속합니다. 다만,  대대적으로 플래카트를 내걸며 사적인 추모의 염을  공적 캠페인으로 만들어 이 일을 덮어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지지율 관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관심사일 뿐입니다. 지금 당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과거에 당신들과 똑같은 짓을 했었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들이 앉아 있으나,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나, 우리 딸들은 그 밑에서 똑같은 고통을 받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어느 놈이 오든 그 짓 못하게 막아 줄 시스템입니다. 그게 유일한 관심사여야 합니다. 

전우용씨는 그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른답니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이 사건 가해자의 가족일 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훌륭한 "남자 사람"은 아마 만나기 힘들 거랍니다. 이 문제, 사회에서 이렇게 처리하면 아마도 같은 사건이 영원히 반복될 겁니다. 자칭 페미니스트 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저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내 윤리적 직관은 지금은 우리가 성추행 피해자 편에 서는 게 옳다고 말합니다. 박시장은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마지막 사람이라 내게도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서 차마 말을 못하고, 유창선씨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했던 것입니다. '인용'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발언할 수 있게 해 준 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당연한 일 하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다 우리가 좋아서 한 겁니다. 누가 그거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희생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서, 내 삶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했던 일입니다. 그거 훈장으로 내세우지 마세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고 뜨거운 맹세를 했죠? 그 맹세, 지켜야 합니다.

더군다나 운동이 '경력'이 되고 '권력'이 된 지금,  명예 타령하지 마세요. 당신들 강남에 아파트 가졌잖아요. 인맥 활용해 자식 의전원 보냈잖아요. 운동해서 자식들 미국에 유학 보냈잖아요. 청와대, 지자체, 의회에 권력 가졌잖아요. 검찰도 가졌고, 곧 사법부도 가질 거잖아요. 그 막강한 권력으로 부하직원들 성추행까지 하고 있잖아요. 이미 가질 건 가졌는데, 뭘 더 바라십니까?

과거에 무슨 위대한 일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지 마세요. 당신들의 그 빌어먹을 업적, 이 사회는 넘치도록 보상해 드렸습니다.  '명예'를 버린 건 당신들 자신입니다.  자신들이 내다버린 명예, 되돌려 달라고 사회에 요구하지 마세요. 나를 포함해 운동권, 그렇게 숭고하고 거룩하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어느새 잡놈이 됐습니다.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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