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권 전 교수
[심일보 대기자]  태권도에 발차기의 기본은 앞차기이다. 옆차기, 돌려차기, 찍어차기 등등 다양한 발차기가 있다. 일단 발차기는 진중권 전 교수가 날렸다.

배현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귀국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씨에게 '병역비리 의혹 해소'를 요구한 것에 대해 진 전 교수는 12일 "박주신씨 병역비리 의혹은 이미 깨끗이 끝난 사안"이라며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어디서 꺼리도 안 되는 것을 주워와서 그것도 부친상 중인 사람을 때려대니 도대체 머리에는 우동을 넣고 다니나. 야당이라고 하나 있는 게 늘 옆에서 똥볼이나 차고앉았다"고 찍어찼다.

맞고 가만히 있을 배 의원이 아니었다. 배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내 친구 조국 이후 분열적인 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움 겪고 계신 진중권 (전) 교수님께는 깊은 안타까움을 전한다.”라면서 “한 때 창발적 논객이셨는데 최근 북한에서나 쓰는 ‘삶은 소대가리’식 막말 혹은 ‘똥’만 찾으시니 그저 안타깝다”며 “많이 힘드신가 보다”라며 곧 바로 옆차기로 응수했다.

맞고 있으면 진중권이 아니다. 진중권은 이내  "물론 이 말을 우동이 알아들으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만"이라고 짧은 돌려차기로 대응했다.

"우동"이라는 기합을 넣기는 했지만 발 끝은 배현진이 아닌 정치권, 특히 여당을 향했다.

다음은 13일 오후 진중권의 해당글 전문이다.

하도 이상한 프레임들을 들이대길래 제 생각을 대충 정리해 봤습니다. 혹시 이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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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두 가지 감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에게 수년 동안 추행당하고, 그의 죽음으로 당사자에게 사과받을 기회마저 잃어버린 채 그의 지지자들에게 2차가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의 고통입니다. 두 감정을 모두 존중해야 하나, 그 둘이 충돌할 경우 우선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감정입니다.

여기저기 인터넷과 SNS를 돌아다니며 보니 피해야 할 2차가해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피해자의 신분을 추적해 직접 공격하는 것입니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방식도 자주 눈에 띄고, 이 사건을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공작으로 몰아가는 문빠스러운 방식도 발견됩니다.  이를 위해서 허위사실을 조작해 유포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성추행의 폭력성을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방금 인문등신체로 쓰인 어느 교수의 막글을 봤습니다. (그 안에서 고생하는 인문학이 안쓰러웠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박시장의 성추행은 그의 순결한 삶에 찍힌 한 톨의 먼지에 불과하답니다. 고로 그것을 탓하는 것은 '순결주의 테러리즘'이랍니다. 이로써 성추행의 가해자는 (다른 모든 위인들처럼) 다소 때가 묻은 성자가 되고, 성추행의 피해자와 그를 지키는 이들은 졸지에 '테러리스트'가 됩니다. 아주 악질적입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적절한 원칙은 '피해자'의 감정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인물의 공과를 따져야 할 맥락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사안은 특정인의 기념비를 세우냐 마느냐, 혹은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추행이 벌어졌고, 피해자가 발생했고, 그 고통에서 피해자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지금 찾아야 할 것은 그 회복의 방안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문제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논의를 하는 곳에서 느닷없이 성추행의 가해자가 얼마나 뛰어난 업적을 쌓았는지 얘기하는 것은, 방금 위에서 말한 '원칙', 즉 이 사안에서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가해자 가족이나 친지의 감정이 아니라 피해자의 감정이라는 원칙에 위배됩니다. 그게 가해자와의 사적인 친분에서 오는 감정인지, 아니면 진영에 대한 이념적 충성에서 비롯된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발언 자체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자신을 성추행한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도덕적인 사람이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가 왜 자신을 추행한 그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야 하나요? 그 사람의 높은 도덕성이 성추행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높은 업적을 쌓았든, 그것이 타인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타인에 대한 성추행을 정당화해 주는 업적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치유와 회복', 이것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인 제1의 원칙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 사건을 그냥 묻고 넘어간다면,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충청남도에서 부산에서 서울에서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진보를 자처하는 지자체장들이 저지른 일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합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가능했는지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위력을 행사해 못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지위를 갖는 기관에서 이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당에서는 일단 자신들이 공천한, 즉 공적으로 추천한 후보들이 줄줄이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데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합니다. 김해영 최고의 사과는 그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그 당 의원들은 계속 딴소리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해찬 대표는 기자에게 막말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합니다. 막말은 대표가 했지 대변인이 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

야당에서는 이 사건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비판은 올바른 대의 위에 서야 합니다. 피해자의 감정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하되, 유가족의 마음 또한 상하게 해선 안 됩니다. 모든 비판이나 지적은 피해의 회복을 목적으로 해야 하고, 재발을 막기 한 노력에 집중돼야 합니다. 쓸 데 없이 사안을 진영대립으로 몰고가면, 문제의 본질은 사라집니다. 그럼 가해자를 편드는 이들은 만세를 부를 것이며, 피해자는 더 힘들어질 겁니다. (물론 이 말을 우동이 알아들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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