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검찰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심일보 대기자] 한 스승에게 네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는 제자들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명씩 차례대로 여행을 보냈다. 먼 곳에 있는 배나무 한 그루를 보고 오는 여행이었다. 그런 다음 각자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게 했다.

첫 번째 제자는 겨울에 가서 그 나무를 보았다. 나무는 차가운 바람 속에 잎사귀도 없이 헐벗음 자체였다. 껍질 속 중심부까지 메말라 있었다. 제자는 돌아와서 스승에게 나무가 못나고, 굽었고, 아무 쓸모 없다고 설명했다. 성장을 암시하는 생명의 힘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봄에 가서 나무를 보고 온 두 번째 제자는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본 나무는 가지마다 새 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다. 뿌리는 끊임없이 생명수를 길어 올리고,  마치 봄과 사랑에 빠진 무언의 몸짓처럼 움마다 봄기운을 단단히 오므려 쥐고 있었다. 제자는 앞날이 무척 기대되는 나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제자는 초여름에 나무를 보러 갔다. 그를 맞이한 나무는 온통 흰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뿌리는 단단히 땅을 움켜쥐고 있고, 수술과 암술을 보듬어 주는 꽃들에서는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 그 만개한 세계에 이끌려 다른 존재들이 모여들었다. 제자는 여태껏 본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난 네 번째 제자는 어떤 평가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가을에 가서 나무와 만난 그는 가지가 휘어질 만큼 매달린 황금빛 열매들을 목격했다.

그 열매들은 태양과 비바람에 자신을 내맡긴 믿음의 결과였다. 제자는 돌아와서, 햇빛과 비를 당분으로 바꿔 풍요와 결실을 이뤄내는 나무의 연금술에 깊이 감동했다고 말했다.

스승은 네 명의 제자를 불러 모두의 의견이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지만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고 말했다. 각자가 본 것은 그 나무의 한 계절에만 해당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스승은 말했다.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인생을 판단해선 안된다. 한 계절의 고통으로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줄 기쁨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만 겪어 보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해당된다. 시인 류시화는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 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해석했다.

3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40일 만에 침묵을 깨고 "민주주의라는 허울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해야 한다"고 말한 가운데, 진보, 보수는 물론 여야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범여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찰 출신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윤 총장 발언의 문장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정부패 척결은 총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검찰이 과잉수사를 하거나 검찰권을 남용한다면 문제"라면서도 "(수사 대상이) 청와대라고 해서 과잉수사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검사의 절제와 균형을 언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재와 전체주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윤 총장을 비판했다.

황 최고위원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무기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수사 안 할 것은 조작과 공작을 해서라도 수사하고, 마땅히 수사할 것은 갖은 핑계를 대며 캐비닛에 처박아두는 재량을 마음껏 누리지만,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없는 '검찰의 독립'을 내세워 철옹성을 쌓고 제 맘대로 하는 것이 바로 독재고, 그런 무소불위, 무통제의 검찰 조직이 전체주의 그 자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 어디에 이런 검찰이 우리 말고 어디 있는지 예를 들어보면 좋겠다. 아마 카자흐스탄 정도 아닐까"고 덧붙였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국정농단, 사법농단을 수사할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며 "국정농단, 사법농단 세력과 함께 박근혜 정부를 뒷받침한 검찰농단 세력이 안면몰수하고 과거의 공범을 수사하니 수사 받는 사람들이 승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검사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검사들이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법원 블랙리스트 수사를 하는걸 보고 역시 만들어본 사람들이 어딜 수사해야 하는 줄 아는구나 싶어 어이없었다"며 "윤석열 총장, 이성윤 검사장, 이정현 1차장, 정진웅 부장은 2015년 남부지검 성폭력을 은폐한 검찰 수뇌부의 조직적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데 일심동체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통합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고 평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윤 총장의 의지가 진심이 되려면 조국, 송철호, 윤미향, 라임, 옵티머스 등 살아있는 권력에 숨죽였던 수사를 다시 깨우고 되살려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과 상식이 반갑게 들린 시대의 어둠을 우리도 함께 걷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김도읍 통합당 의원 또한 "최근 일련의 검찰 상황을 보면 일부 검찰은 정권 입맛에 맞는 것으로 완전히 장악됐다고 본다"며 "민주주의 허울을 쓰고 합법을 가장한,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우리도 모르게 무너지고 있는 생각을 저는 하는데 윤 총장도 같은 고민을 했구나 한다"고 말했다.

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와, 세다. 결단이 선 듯"이라며 "이 한 마디 안에 민주당 집권 하의 사회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했다.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When it flowers, we will see).'라는 뜻이다. 지금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윤석열 검찰총장은 '킬레가 또 데켕게'란 마음으로 "민주주의라는 허울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해야 한다"고 작심발언을 했을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이 자연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내는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인내는 앞을 내다볼 줄 알고 살아가는 일이다. 가시를 보고 피어날 장미를 아는 것이고, 어둠을 보고 떠오르는 보름달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