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왼쪽) 전 미국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진행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공식선출된 후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정재원 기자]조 바이든(77) 미국 전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이에따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선 맞대결이 본격화됐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오후 화상으로 진행된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본행사에서 대의원 공개투표인 '롤 콜'(Roll Call·호명) 투표를 통해 후보 지명 기준인 대의원 과반을 확보해 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당내 경선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한 때 '대세론'이 흔들리기도 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 선거)에서 연이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패배했지만 3월에 열린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승기를 잡았다.

그는 20일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전당대회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29세에 상원의원 당선…화려한 정치 인생

 바이든은 1942년 11월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델라웨어대학과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1969년에 변호사가 됐다. 바이든은 1970년 카운티 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1972년 29세의 나이로 델라웨어주에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 그는 미국 역사상 여섯 번째로 어린나이에 상원의원이 됐다.

바이든은 이후 내리 6선에 성공하며 민주당 내 전국구 의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오랫동안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한 때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1991년 걸프전쟁에 반대했지만, 동유럽 지역에서의 북태평양조약기구(나토·NATO) 확장과 1990년대 유고 내전 개입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바이든은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8년간 부통령을 역임했다.

바이든은 1988년과 2008년 출사표를 던지며 대권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대권 도전인 셈이다.

바이든이 올해 11월3일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당선되면 파리 기후협약 재가입…동맹 관계 복원

 바이든은 화려한 정치 이력과 국정운영 경험 및 높은 대중 인지도가 강점이다.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주요 정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은 기후변화는 실질적인 위협이라면서 대통령이 되면 파리 기후협약에 재가입해 다른 국가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

바이든은 향후 10년간 녹색 기술 연구에 1.7조 달러(약 2009조 9,100억 원) 투자를 제안한 상태다. 그는 오는 2050년까지 미국의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 제로(0)'로 만드는 정책에 지지를 표명했다.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면 우선은 국내 문제에 더 치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채택하며 고립주의를 심화한 반면 바이든은 다자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이든은 미국의 동맹들과의 관계를 복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민주당 정강정책에는 한미 분담금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갈취한다는 표현이 들어가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 때 정강정책도 함께 채택한다. 이번 정강정책은 사실상 바이든의 공약이나 마찬가지다.

정강정책에서 민주당은 "한반도 핵 위기 상황에서 그(트럼프 대통령)는 동맹의 분담금을 극적으로 인상하기 위해 우리의 동맹인 한국을 갈취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중국이 불공정한 환경과 무역 관행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했지만, 일방적인 관세 부과 대신 다른 민주 국가들과 연합체를 형성해 중국이 이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운한 가정사...교통사고로 첫 부인과 사별·장남도 세상 떠나

 바이든은 정치인으로 화려한 인생을 살았지만 가족사는 순탄치 않았다.

바이든은 1972년 11월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달 만인 12월 성탄절 쇼핑을 나갔다가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13개월된 딸을 잃었다. 두 아들도 다쳤다.

아내와 어린 딸을 잃어 큰 충격을 받은  바이든은 의원 사퇴까지 고려했지만, 마이크 맨스필드 당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만류로 마음을 돌렸다.

바이든은 1977년 현재 부인인 질 바이든과 재혼했다. 2015년에는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던 장남 보 바이든을 뇌암으로 잃기도 했다.

이런 역경을 극복해 낸 바이든은 분열보다는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내보내며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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