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단휴진 단체행동 나선 대전협
[정재원 기자] 정부와 의료계 사이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제2차 전국의사총파업을 시작한 대한의사협회(의협)은 당초 28일까지 파업을 이어간다고 예고했으나 정부와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며 현 휴진 상황을 장기화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29일 오후 의협은 오후 범의료계 4대악 저지 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를 열고 다음달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서울 용산구 임시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10명에 대한 고발 조치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은 부당한 공권력의 폭거”라며 “전문변호인단을 조속히 구성하는 등 가용한 모든 방법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급기야 30일 오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집단휴진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자, 정부가 곧바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집단휴진에 대한 입장'에서 "정부는 코로나19 위기가 끝날 때까지 정책추진과 집단휴진 중단하고, 이후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협의하자고 몇 차례 걸쳐 양보안을 제시했다"며 그간의 잠정 합의안까지 공개하며 대전협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부 입장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7월 23일 의과대학 정원을 10년간 4,000명 늘리기로 확정지었다. 이에 따르면 2022학년부터 10년간 의대정원이 총 4천 명 늘어난다. 그 중에서 3천 명은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 '지역의사 특별전형' 을 통해 전액장학금을 받는 대신에 10년간 특정지역에서 의무복무를 하게 된다. (이를 어길시에는 지원받았던 학비를 갚아야하고, 의사의 면허가 취소.)

그 외에 1,000명 중 500명은 이번 전염병으로 필요성이 커진 역학조사관,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 전문분야 의사를 선별하고, 남은 500명은 기초의학과 제약, 바이오 분야 연구인력으로 의사 정원을 확대한다고 밝다.

8월 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휴진에 대화와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청했다. 박장관은 "의대 정원 확대는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일이며,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점을 이해 해달라" 고 부탁했다.

이날 보건복지부에서는 자료를 통해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낮다고 설명하며,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4명으로 2032년이 되어서야 OECD 평균 의사 수인 3.4명에 근접한다고 말했다.

심각한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 등 특수분야 의사들의 부족현상을 의사 증원으로 해결해야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반대 입장

8월 7일, 서울경기인천 지역의 전공의 6,000여 명은 여의도의 집회장소에서 정부에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요구 사항의 골자를 살펴보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에 대한 소통, 전공의가 포함된 의료정책 수립 시행 관련해서 전공의와 정부의 상설소통기구의 설립을 요청, 전공의 수련비용의 지원과 지도전문의의 내실화, 의사들이 기피하는과에 대한 국가지원 등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를 요구, 전공의가 더 나은 환경에서 수련받을 수 있도록 전공의 관련 법령 개정 등이다

마지막으로 전공의들은 정부의 무분별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에 대해 전면 재논의하고, 모든 의료 정책 수립에 젊은 의사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며 수련병원을 통한 협박과 전공의들을 상대로 한 언론플레이를 즉시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OECD 평균치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인 일본, 미국, 프랑스 보다도 원하면 언제든 병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의료접근성이 우수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9년 보건복지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건수는 연간 16.9회, 평균 입원일수는 19.1일인데 반하여, OECD 평균의 외래진료 횟수 7.1회, 입원일수 8.2일로 두 배 이상 차이나며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의협은 지역 불균형 해소 정책으로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도 말했는데요. 우리나라 국민들이 외래진료를 받는 건수는 세계탑 수준이지만 그에 반해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며, 턱없이 낮은 의료 수가를 지적했다. 의사 수가 늘어난다면 낮은 의료 수가로 인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고, 과잉진료와 같은 행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회진보연대 입장

"공공의료로 분칠한 의대 증원 정책과 정부의 갈등 조장을 규탄한다"

지난 28일 사회진보연대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다음은 해당글 전문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실효성을 따져보려 한다. 특히 정책의 맥락을 문재인 정부의 다른 보건의료정책과 함께 분석해 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대 정원 증가 정책은 공공의료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 강화에서 우선적 과제는 건강증진과 예방 차원의 일차의료 강화와 병원의 영리 추구 행위 규제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으며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만 늘어나면, 과잉진료와 비급여진료라는 ‘의사 유인 수요’만 늘어날 뿐이다. 정작 의료자본과 대립해야 할 어려운 과제는 피하면서, 코로나19 재유행이라는 위급한 시기 인기영합 정책만 추구하고 있는 정부의 행태를 규탄한다.

무턱대고 의사 수만 늘리면, 의사 유인 수요만 발생한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진실인가?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의사 생산성 때문이다. 의사의 절대적 수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건 사실이다. 대신 한국 의사들은 환자를 훨씬 더 많이 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2012년 한국의 의사 1인당 환자 수는 50.3명으로 유사한 의료체계를 가진 일본의 31명보다도 높으며, OECD 평균인 13.1명보다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오영호, 2016)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0년 의사 인력 공급이 여러 시나리오에 따라 과잉일 수도, 부족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의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여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사 인력 공급을 증가시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의료공급체계와 지불보상제도 개편이다. (오영호, 2016) 전제가 필요한 건 의사 유인 수요 때문이다. 의사 인력 공급을 늘렸을 때 환자들의 의료 수요가 그대로라면, 의료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늘면서 의사가 유발하는 ‘의사 유인 수요’가 커져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증가한다면, 의료의 질은 향상되지 않고 의료비 지출만 증가한다.

의사 유인 수요는 의사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환자-의사 간 정보비대칭 때문에 발생하는 과잉 의료서비스를 뜻한다. 손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일반적인 감기에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데도 주사를 처방한다거나, 비슷한 효과를 가진 비수술적 치료가 존재하는 데도 척추 수술을 권유하는 경우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의사 유인 수요가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김창엽, 2018)

한국은 세 가지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의사 유인 수요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다. 첫째,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행위 수에 비례해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사들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행위 수를 늘리게 된다.

둘째, 비급여 진료가 만연하다. 비급여는 가격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규제도 급여에 비하면 미미하다. 특히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으면서, 효과는 불분명한 비급여가 의사 유인 수요의 좋은 수단이 된다. 환자 몸에 위해는 최소화하면서 수입은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실손의료보험의 존재다. 앞선 두 가지 상황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 불필요한 비급여 또는 급여 의료행위를 했을 때, 당시에는 그 경제적 비용을 의사도 환자도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에는 환자에게 보험료 증가로 돌아오지만, 그걸 고려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의사 유인 수요를 증가시켜 왔다

보건복지부는 증가하는 의사들이 지역에서 10년 의무복무 해야 해서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0년 의무복무에는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기간 4~5년이 포함되어 있다. 의무복무는 경험을 쌓는 기회로 쓴 뒤, 수도권에 가서 미용·성형의원을 개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결국 5~6년의 지연기간만 있을 뿐, 공공의료와 무관한 의사 수를 4천 명 더 늘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의료공급체계, 지불보상제도, 실손보험 개혁부터 먼저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 문재인정부는 특별히 한 게 없다. 의료공급체계 개혁에서 중요한 건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의 난립을 통제하고, 고가 의료기기를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발표한 공공의료 발전 로드맵인,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에는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불보상제도 개편은 이전 정부들부터 하고 있던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을 확대한 것 외에는 별로 한 게 없다. 실손보험 개혁 역시 실망스러운데, 실손보험료를 인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포기했다. 민간보험사에게 보험료 인상폭 축소를 ‘권고’했을 뿐이다.

오히려 의사 유인 수요를 더 촉발하는 정책만 시행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문재인케어의 ‘예비급여’다.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신의료기기를 부분 급여화 해주었다. 이는 의료기기 업계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해주기 위한 정책이다. 신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행위는 대부분 비싸다. 따라서 의사들이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삼기 쉽다. 부분적일지라도 급여화 되면 신의료기기 사용량이 증가한다. 신의료기술 사용량 증가는 의사 유인 수요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에머리대학교, 펜실베니아 대학교 연구팀에 의하면, 수입이 의료행위의 횟수에 비례하면 의사는 효과는 비슷하지만 싼 기존 기술보다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신의료기술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Howard et al., 2019)

신의료기기 허가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혁신성이 큰 ‘혁신형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을 통해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허가해주겠다고 한다. 혁신형 의료기기 지원방안에 대해 정부는 2018년에 연구용역을 진행했는데, 연구책임자 두 명 중 하나가 2019년 식약처장으로 임명된 이의경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다.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는 ‘혁신의료기술’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했지만, 정책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한편 민간보험사에게는 환자 개인건강정보가 넘어가는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해주었다. 이를 통해 축적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민간보험사들은 더 성장할 것이며, 의사 유인 수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의료기기 기업과 민간보험사들을 지원해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진행되었다. 2019년 7월에는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건강보험 재정으로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기업을 지원해주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일도 있었다. 전반적인 보건의료정책 기조는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 문재인케어와 같은 간판 보건의료정책은 이런 치부를 가리기 위한 방패막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지지율을 위해 방역을 희생시킨 문재인정부를 규탄한다!

많은 시민들이 정부와 의사 간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걱정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의사 유인 수요로 인한 한국의 과잉의료 현실에 대한 자기 성찰이 없다. 시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사태의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문재인정부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지금, 굳이 의사들과 대립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고수할 명분은 전혀 없다. 어차피 부실한 정책이기 때문에, 폐기하고 나중에 다시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중환자실과 간호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엔 전혀 대응하지 않다가, 지금 시점에서 이 정책을 던진 것은 명백한 오판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심각한 무능이고, 의도가 있었다면 더 큰 문제다. 의도가 있었다면, 지지율 상승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는 코로나19를 앞둔 상황에서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을 하기 어려울테니 정책이 관철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시민들의 생명을 걸고 어설픈 패로 도박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악마화 된 적을 만들어 지지자를 재규합하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는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지지율과 같은 자기 진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도리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기본 원칙을 망각한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치는 코로나 2차 대유행 대응의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 실패의 대가는 환자와 사망자의 증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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