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창원
[신소희 기자]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황산면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신창원에게는 지독한 가난도 고통이었지만,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를 사랑해주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엇나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신창원을 때렸고, 나중에는 계모까지 들어왔다. 계모는 신창원의 동생이 아픈데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학교 생활에도 별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신창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출을 시작했고, 결국 중학교에 진학한 지 3달 만에 퇴학당했다."

신창원의 어린시절 이력이다.

그가 범죄자가 된 계기는 그의 저서에 남양국민학교 5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막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악마가 태어났음을 느끼고 어둠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신창원이 경찰서에 끌려간 것이 14살 때였다. 어느 날 좀도둑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는 신창원을 범죄자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창원의 아버지는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답시고, 경찰관들도 훈방 조치한 신창원을 굳이 다시 끌고 와서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을 하여 잡아넣었다.

아버지의 의도는 정말 좋은 뜻이었는지 어떤지 몰라도,이 때문에 신창원의 인생은 망가졌다. 소년원을 다녀온 일을 계기로 감옥에 한 번씩 갔다 올 때마다 그의 범죄는 나날이 대담해졌으며, 결국에는 강력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신창원은 어릴 때부터 싸움을 잘 했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했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권투를 배워 걸핏하면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러다 한 번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일이 있었는데, 합의금으로 줄 돈이 없어 후배들과 함께 돈 좀 있어 보이는 행인을 협박해 돈을 털기도 했다.

이후 서울에서 고향 선후배 4명과 모의해 슈퍼마켓과 금은방 등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1989년 3월 28일에 주범인 김양훈이 문구점을 운영하는 피해자를 살해하게 된다. 다른 일당 4명은 4월 1일에 체포됐지만, 신창원은 총상을 입고 도주에 성공했고 반 년 뒤에 체포되었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신창원' 편
"1997년까지 단 한 명의 탈옥도 허용하지 않았던 부산교도소. 강도치사죄로 이곳에 복역 중이던 신창원은 하루에 20분씩 2달 동안 감방 화장실, 환기통 쇠창살을 자른다. 그럼에도 비좁은 이를 통과하기 위해 무려 20㎏을 감량, 탈옥에 성공한다."

8일 밤 방송된 SBS TV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됐다.

신창원의 도주극은 무려 907일간 이어지며 숱한 이야기들을 낳았다. 연 인원 97만 명이 동원된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국 곳곳을 활보하며 4만㎞ 도주했다. 신출귀몰한 행적과 함께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동으로 신드롬까지 일으킨다.

'신출경몰?신창원이 출몰하면 경찰이 몰락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유행시켰다. 이날 방송은 신창원이 오랜 기간 도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여성 15명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탈옥 10일 만에 충남 천안 다방에서 만난 여성이 감기몸살이라고 하자 그는 감기 몸살 약을 사왔다. 여성은 자상한 그에게 호감을 가졌고 이후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다. 그 여성은 처음에 신창원이 누구인지 몰랐다. 뒤늦게 여성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는데 여성은 자신의 집에서 머물 것을 제안했다. 이후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올해 53세가 된 신창원의 근황도 전달됐다. 신창원은 재수감 이후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붙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재소자들의 심리 상담을 위해 현재 심리학을 공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창원이 제작진에 보낸 편지도 공개됐다. 그는 "사형도 부족한 중죄를 지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모두 자기변명에 불과할 뿐이지요. 저는 그저 이곳에서 조용히 속죄하며 마무리하고 싶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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