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진중권 전 교수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친문 저격수로 변신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올해도 정부ㆍ여당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면서 사실상 혼자서 제1야당 역할을 다해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진보 논객이 진보를 표방하는 집권 세력의 이중성을 비판하니 설득력을 얻었다. 철학과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예리한 레토릭은 야당의 비판 기능을 능가했다. 
 
그런 그가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4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되자 “이로써 내 싸움은 끝났다”며 페이스북 절필을 선언했다. 
 
이에 친문 커뮤니티 등에서는 환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간 진 전 교수의 진보진영 비판을 언론은 의미 있게 보도했고, 이에 대한 친문 진영의 반감은 상당했다. 진 전 교수 특유의 비꼬는 표현은 비판의 또 다른 요인이었다.
 
반면 반문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 등에서는 진 전 교수의 퇴장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누리꾼은 "보수에서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진중권의 말 한마디가 더 위력이 있었다"며 많은 진보 지식인들의 비판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을 높게 평가했다. 
 
27일 뉴시스는 지난 23일 진 전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날 진중권 교수는 "보수는 너무 오랫동안 현실에 안주해왔다. 이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보수는 산업화 서사를 쓴 사람들이다. 옛날에 경부라인, 서울과 부산항이 경제의 두 축이고 중간에 대구가 있었다. 산업화를 이룩한 사람들은 대개 강남에 살고. 당시엔 이들이 주류였다. 그런데 산업화 사회도 끝났고 정보화 사회로 넘어갔다.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헤게모니 세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들은 경제 주체도 아니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정치적 관념들을 갖고 있지도 못한 상태에서 아직도 자기들이 주류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렇다 보니 정치적 대응에도 주류들의 전략을 쓴다. 상대를 고립시키는 전략 없이 맨날 '빨갱이', '사회주의' 이런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 전 교수는 "옛날에는 그런 게 통했다. 그때는 주류이기도 했고 안기부, 보안사,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어서 말 자체가 설득력 있었다기보다는 물리력이 동원돼 힘이 있었던 것"이라며 "대중의 공포를 조장해서 그들을 고립시켰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해봤자 자기들만 수구세력으로 낙인 찍힌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오버독(강자) 전략을 하고 있다"며 "이렇다보니 대중을 움직이지 못한다. 반대로 지금 진보진영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과거 국가 권력과 싸우느라 믿을 건 대중밖에 없었지 않나. 전략, 전술 등이 그런 쪽에 특화돼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 전 교수는 보수의 몰락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진단했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보수의 산업화 서사가 끝났으면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게 그걸 쓰지 못하고 리바이벌(Revival)했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 전략을 다시 쓰다 보니 4대강 사업을 했던 거고 박근혜 정권은 3, 4공화국 때로 돌아갔다가 시대에 안 맞으니 결국 탄핵이 된 것"이라고 했다.
 
또 "이후에 선거에서 네 차례 연거푸 졌는데 친박공천이니 뭐니 하면서 능력, 실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 말을 잘 듣는 사람들만 앉혔다. 그래서 지금 보면 인재가, 인물이 없지 않나. 구심점 역할을 할 인물이 없다"고 꼬집었다.
 
보수 진영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통해 개혁보수, 진영 재건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지 묻자 "저는 바뀔 가능성은 4, 말짱 도루묵일 가능성은 6 정도로 본다"고 답했다.
 
진 전 교수는 "이 정도 상황이면 안 바뀔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김종인 위원장이 있고 초선 의원들이 뒷받침해주는 것 같은데, 관건은 김종인 위원장이 당을 떠났을 때 국민의힘이 개혁이라는 걸 계속 이어갈 수 있느냐, 이 부분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당내 개혁을 주도할 세력, 어떤 핵심층이 허리층에 의해 형성되어야 김종인 위원장이 빠졌을 때 또 새로운 인물이 당 대표로 등장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보수의 희망을 가질 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중도보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속에 무엇인 문제인지, 지금 시대 정신을 봐야 한다"며 "현 정권이 법률과 절차를, 공정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국민을 양극화로 갈랐다. 그렇다면 공정과 통합을 내세우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 전 교수는 보수든 진보든 점점 양극화에 치닫는 상황을 지적하며 "진영에 미쳐서 진영의 노예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국민들에게도 조언했다.
 
그는 "여러분이 주인으로서 진영을 심판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판단을 진영에 맡겨선 안 된다. 내가 판단하고 내 판단에 따라서 진영을 택하고 그 진영이 잘못되면 심판해야 한다. 진영에 맡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자기의 개인성을,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주주의는 투표장에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당신의 직장에 있다"며 "무슨 얘기냐면 상관이 부당한 일을 시킬 때 안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지금 그런 걸 못하는 상황이지 않나. 지금 그런 걸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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