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심일보 대기자] "1963년생인 박범계 의원은 윤석열 총장보다 나이는 세 살 어리지만 사법연수원 동기(23기)다. 박 의원은 2013년 11월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중 징계를 받자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범계 아우’로 칭하며 “윤석열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는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며 윤 총장을 깎아 내렸다. 이에 윤 총장은 “과거엔 저에 대해 안 그러셨지 않느냐”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박범계 의원 사이에 대한 한 언론 기사다. 사실 두 사람의 '3살차' 관계는 언론에 자주 등장한 바 있다.
 
조선시대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걸'에는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 공경을 더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이 차이가 상하 관계로 인식된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의 기수제 문화와 해방 이후의 군대식 문화, 70~80년대 이후 주민등록체계의 정비 등과 맞물려 괴상한 시너지를 내며 퍼졌다는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원래는 과거 한국도 약간의 나이차이에는 크게 상관없이 편하게 벗으로 사귀었다. 유명한 '오성과 한음'도 5살 차이다. 일제강점기를 겪기 전에는 고작 한두 살로 계급을 나누는 문화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한두 살로 계급을 나누려는 문화는 지금보다 오히려 덜했다. 60년대생들까지만 하더라도 친구 중에 3살 이상 차이나도 말을 놓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중국, 일본, 북한에서는 단순 1~2살 차이로 연장자 대접하는 문화는 아예 없다. 서양 역시 4~5살 차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며, 나아가 나이 대략 10~2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면 어느 정도 어르신으로서 우대하는 문화는 있지만 한국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나이 차이로 언어가 바뀌는 그나마 비슷한 케이스는 베트남 정도가 있다.
 
특히 중국어에서 '존댓말, 반말'이라는 동사변화 개념의 경어법이 없다. 성리학적 질서가 사회 근간으로 뿌리깊게 박혀 있던 근대 이전의 조선에서도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한두살 차이로 서열 따져가며 친구가 되네 마네했다는 기록은 없다. 
 
종합하면 본래 한국도 나이 서열 문제가 엄격하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와 군부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군대식 서열 문화가 높으신 분들을 통해 하향식으로 전파되었고, 이것이 당시 사회 변화와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정착해 버렸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나이 3살 차이 정도를 '친구'로 생각하던 '선배'로 생각하던 그것은 각자의 의지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선배를 친구로 부르거나 친구를 선배로 부르는 경우는 일종의 열등감이나 우월감의 표출이다. 또 그런 나라는 없다.
 
'자기 나이에 알맞은 이지(理知)를 갖지 못한 사람은 그 나이가 가지는 온갖 불행을 면치 못한다'는 말이 있다. 
 
2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임에 박범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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