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한 수, 영화
프로기사 '태석'(정우성)은 우연히 내기 바둑판에 발을 들였다가 형을 잃고, 형을 죽인 누명까지 쓴 채 감옥으로 간다. 태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물은 내기바둑판의 절대강자 '살수'(이범수)다. 태석의 목표는 당연히 살수에 대한 복수다. 감옥에서 몸을 단련해 살수에 맞설 수 있게 된 태석은 출소 후 살수에게 당해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을 모아 복수에 나선다.

영화 '신의 한 수'의 조범구 감독은 아마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의 설정에 '오션스 일레븐'(2001)식 케이퍼 무비를 버무리고, 액션을 첨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개봉 연도가 2014년이 아닌 2004년이었다면, 어쩌면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은 이 기간, 한국의 특급 오락영화 감독 '최동훈'을 만났고, '오션스' 시리즈를 통해 케이퍼 무비의 진수를 맛봤으며, 피와 살이 튀고 총과 칼이 난무하는 액션에 단련됐다. 안타깝게도 '신의 한 수'는 모든 면에서 어설프다.

'타짜'의 콘셉트를 가져왔다는 것은 '타짜'가 화투로 삶을 말했 듯 '신의 한 수'는 바둑이라는 두뇌게임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영화는 '패착'(지게 되는 나쁜 수), '착수'(바둑판에 돌을 놓다), '포석'(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행마'(조화를 이뤄 세력을 펴다), '회도리치기'(연단수로 몰아치는 공격), '곤마'(적에게 쫓겨 위태로운 돌), '사활'(삶과 죽음의 갈림길) 등 바둑 용어를 각 챕터의 제목으로 사용한다. '타짜'도 그랬다. '평경장'이 '고니'에게 했던 화투판 명언으로 소제목을 단 것을 관객은 기억한다.

문제는 이런 콘셉트를 일정 부분 가져왔다는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타짜'가 평경장의 가르침과 삶, 그리고 화투판의 살기를 절묘하게 조합하는 데 성공했던 것과 달리, '신의 한 수'는 바둑용어와 바둑판 그리고 인생을 뒤섞는 데 실패한다는 점이다. 바둑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신의 한 수'에서 바둑이 하는 역할은 각 챕터의 제목을 멋지게 꾸미는 것 이상이 아니다.

'신의 한 수'는 사실상 바둑이 필요 없는 영화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액션이 그 원인이다. 물론 감독과 배우들은 '신의 한 수'가 '오락 액션' 영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둑이 소재로 쓰였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액션' 영화라는 것보다 더 큰 인상을 심어준다. 관객은 바둑이 어떤 영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낼지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신의 한 수'의 바둑 장면에는 긴장감이 없다. 그들이 왜 바둑을 두는 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석은 살수와 그의 부하들을 죽이려 한다. 태석은 감옥에서 가공할 신체 능력을 얻었다. 그냥 찾아가서 죽이면 된다. 내기바둑판을 만들어서 살수에게 복수를 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그러나 태석과 동료들은 굳이 바둑을 둬서 없어도 되는 위기를 만든 후 모두가 다치고, 그제야 살수를 죽인다. '배꼽'(이시영)의 술집에서 태석과 살수가 만나는 장면이 있다. 태석은 살수를 알지만, 살수는 태석을 모른다. 이보다 더 살수가 태석을 죽이기에 좋은 조건이 있을까. 그런데 태석은 살수를 살려 둔다. 왜?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살수와 앉은 후,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 두 사람이 주먹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바둑이 너무나도 기능적으로 쓰이고 만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다.

이런 가정을 해봐야 한다. 바둑이 없고 액션만 있는 '신의 한 수'의 서사와 액션은 없고 바둑만 있는 '신의 한수'의 서사 중 어떤 것이 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는지 말이다. '타짜'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였다.

태석이 '고니', '주님'(안성기)이 '평경장', 배꼽이 '정마담', '꽁수'(김인권)가 고광렬, 살수가 '아귀'(김윤석)와 매우 유사한 캐릭터라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신의 한 수'는 케이퍼 무비의 형식을 일정 부분 빌렸다. 각 분야의 범죄 전문가들을 영입해 이들의 활약을 그리는 이 형식에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인물의 매력을 각각 얼마나 매력적으로 그리느냐, 또 이들이 범죄를 완성하는(혹은 복수에 성공하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느냐다.

일례로 앞서 말한 '오션스' 시리즈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이 두 가지 핵심 사항을 정석적으로 영화 안에 구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등의 초호화 캐스팅을 한 이유는 각각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서다. 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빼내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도 뭔가를 훔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만큼 매혹적이다.

'신의 한 수'에는 주인공 태석을 비롯해 생생한 인물이 없다. 이는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연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애초에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 의지가 없었다. 캐릭터의 생동감은 각 인물이 부여받은 성격에서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 태석은 '복수를 꿈꾸는 남자'라는 말 외에는 그를 설명할 다른 말이 없는 인물이다. 주님은 '맹인 고수', 꽁수는 '까부는 사람', '허목수'는 '기술자', 살수는 '악인'이라는 말 외에 달리 부연 설명할 게 없다. 이 영화가 간이 덜 된 듯한, 뭔가 어설픈 느낌을 주는 건 이 때문이다.

복수의 쾌감이 덜하다는 점도 아쉽다. '신의 한 수'의 내기바둑은 일반적인 바둑이 아니다. 바둑을 직접 두는 기사가 있고, 그에게 어떻게 돌을 둘 것인가를 알려주는 훈수꾼이 따로 있다. 이 두 사람을 이어줄 장치를 만드는 기술자가 있고, 이들이 위기에 처할 때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행동대장도 있다. 말만 들어도 흥미로운 이 소재를 영화는 클라이막스에서 완전히 제거한다. 액션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기바둑을 성공으로 이끌어 복수에 성공하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신의 한 수'는 까다롭지 않은 관객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배우 정우성을 극장의 큰 화면으로 본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부족하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평범하다.

아름다운 색이 나올 줄 알고 세 가지 색을 섞었는데, 이게 도무지 무슨 색인지 알 수 없게 된 상황, 그게 바로 '신의 한 수'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