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란 세월이 지나갈수록 내구성이 떨어지며 재건축이 거론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부터 아파트가 들어섰기에 재건축 아파트가 이미 들어선 곳도 많고, 지금도 전국 어디선가에는 아파트를 재건축 중이거나 조합이나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재건축을 논의하는 곳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파트 본래의 내구연한에 따른 재건축뿐만 아니라, 재건축을 통한 개발이익을 얻기 위한 수요까지 겹쳐 다른 나라에 비해 재건축 시장이 활발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예전에 판사로 재판 업무를 볼 때나, 그 후 변호사로서 일을 하면서 재건축 관련 사건을 많이 접해 보게 되는데, 재건축 조합의 조합장이나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사람치고 고소, 고발을 한 번이라도 안 당해 본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재건축 시장에서 고소, 고발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조합장이나 위원장이 아무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면 이를 피할 수 있을까? 재건축 시장을 들여다보면 ‘나는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인간의 이기심, 하나라도 더 이익을 보겠다는 인간의 탐욕이 횡행한다.
그러다보니 당해 재건축 이해관계인들의 이해를 조정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고, 자기에게 불리하다싶으면 이를 조정하려는 조합장이나 위원장에 대해서는 불신의 색안경을 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급기야는 고소, 고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조합장이나 위원장 또한 큰 이권을 보고 달려드는 여러 재건축 관련업자들 틈에서 유혹을 이기기란 어렵다.
예전에 판사로서 재판을 할 때에 어느 대기업 주택조합장이 횡령으로 구속된 사건을 재판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서울대학을 나와 대기업 중견 간부로 있다가 직장주택 조합장을 맡게 되었는데, 용도가 한정된 돈을 다른 용도로 쓰고 이를 메꿔 넣지 못하다가 결국은 횡령으로 고소당하여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당시 그를 재판하면서 그가 조합장을 맡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성실한 직장인으로서 살아갔을 텐데, 조합장이라는 지위가 결국 그를 교도소로 향하게 했구나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도 70년대 지은 아파트라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재건축을 감시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 없어 추진위원회 감사로서 우리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인간의 탐욕, 서로에 대한 불신 등을 직접 앞에서 목도하면서, 인간이란 이익 앞에선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하는 깊은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만 보면 눈을 보다 높이 하여 멀리까지 보지 못하나보다.
성경 말씀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던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는, 그래서 웃음으로 진행되는 그런 깨끗한 재건축을 볼 수 있는, 그런 날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