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 기자] 코로나19 발발 이후 위기 극복을 위해 다섯 차례나 추경이 이어지면서 나랏빚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아직 국가채무의 절대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불어날 경우 통제가 어려울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는 복지 수요의 급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10조 원 규모의 국채를 찍어 마련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전에 여권 일각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고 나섰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현실화되면 대규모 국채발행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올해 안에 국가채무 1,000조 원 시대를 맞을 것이란 우려 속에 증세 문제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추경안에 따르면 정부는 총 15조 원 규모의 추경 재원으로 9조9,000억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 규모는 역대 최대인 965조9,000억 원까지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2%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추경을 거듭하는 사이 나랏빚은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지난해 본예산과 비교했을 때 국가채무는 805조2,000억 원에서 160조7,000억 원 늘었고, 국가채무비율은 39.8%에서 8.4%포인트(p) 상승하게 되는 셈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채무비율이) 20%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 데 7~9년이 걸렸지만 현재 속도라면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데 2~3년밖에 걸리지 않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연내 국가채무비율 50% 돌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다 코로나 피해 업종을 위한 손실보상법 법제화로 몇 차례 더 추경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국가채무비율이 2024년에는 58.6%에 달할 것으로 봤다. 정부는 작년 10월 재정준칙을 도입하면서 2025년부터 채무비율을 60% 이내에서 관리하기로 했으나 쉽지 않을 전망이다.
 
IMF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작년 코로나 대응을 위해 동원한 재정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4%로 주요 20개국 가운데 열다섯 번째로 낮았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은 11∼16.7%였고,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6∼7%대였으며, 중국(4.7%)과 스페인(4.1%), 유럽연합(3.8%)도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상대적으로 재정을 상당히 아꼈다고 할 수 있다.
 
다수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민생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푸는 것은 당연하며, 당장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되는 수준도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홍 부총리가 2일 브리핑에서 지적한 것처럼 중장기적으로 성장률 저하 추세,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 도래, 통일에 대비한 특수상황 등으로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재정수지도 적자 폭이 크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89조6,000억 원 적자가 예상된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79년 이후 가장 큰 적자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본예산(3.7%)보다 0.8%p 확대된 4.5%로 오른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빼 정부의 실질적 재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도 126조 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역대 최대 수준인 6.3%까지 올라간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4.7%) 보다도 높다.
 
문제는 추경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향후 자영업자 손실보상법이 제도화 하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추진되면 재정소요는 급증할 전망이다. 
 
작년 지급됐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경우, 총 14조3,000억 원 규모다. 당시와 유사한 규모로 추경을 꾸린다고 전제할 땐 강도 높은 본예산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10조 원대 국채발행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작년부터 여당은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가면서 재정건전성 우려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수준"이라는 논리로 돌파해왔다. 
 
하지만 1년 넘게 나랏빚이 누적되면서 이런 주장도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 등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증세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정부는 선을 긋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추경 편성 과정에서 증세 문제는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며 "증세는 복지 수준과 국민 부담 정도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미 정치권에선 증세에 대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고소득층과 상위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연대특별세'나 토지 보유세 인상 주장은 물론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자는 보편증세 방안까지 제시되고 있다. 일각에선 방역 안정과 경기 정상화가 이뤄지는 시점과 차기 대선이 맞물릴 경우를 가정할 경우 올해 말부터는 증세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향후 수년간 세입확충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향후 증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더 이상 선진국 대비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게 돼 앞으로도 계속 국가채무에만 의존하겠다는 기조가 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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