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가족에게 26조 원에 이르는 상속재산을 물려주면서 상속재산의 60%를 상속세와 기부·기증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했다.
 
특히 고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유가족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를 비롯해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인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과 고지도, 고서 등 2만1600여 점을 국립박물관에 기증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8년 10월 25일, 노부부가 과일 장사로 시작해 평생 모은 전재산 400억 원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한 사연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영석(91)씨와 양영애(83)씨. 김씨는 강원도 평강군 남면에서 태어난 실향민이었다. 15살에 부모를 여읜 그는 17살에 “돈을 벌어오겠다”며 고향에 형제 둘을 두고 월남했다. 하지만 이후 6ㆍ25 전쟁이 터지며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부인 양씨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23살에 김씨와 결혼했다. 이들은 1960년대 초 서울 종로5가에서 리어카로 과일 노점 장사를 시작했다. 몇년 뒤에는 점포도 열었다. 
 
▲ 김영석(91)씨와 양영애(83·여)씨 부부가 2018년 10월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 400억 원을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부의 과일가게는 ”과일 질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번창했다. 이들은 다른 상인들보다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4시간을 일찍 움직여 과일 납품 트럭에서 과일을 받아갔고, 개점 후 3~4시간이면 과일이 모두 팔렸다. 김씨는 “당시 전차비를 아끼려고 과일 납품 트럭이 있는 청량리까지 1시간 거리를 매일 걸었다.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밤늦게 과일을 받으려 걷다가 통행금지 위반으로 잡히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부부는 밥 먹을 돈도 아끼려 점포 인근 식당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었다.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대출을 얻은 부부는 1976년 청량리에 상가건물을 매입했다. 과일가게는 더 커졌고 대출금을 갚아가면서 상가 주변의 건물들도 하나씩 사들였다. 알뜰하게 모이던 재산이 어느덧 수백억대로 크게 늘었다. 이후 두 아들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서 부부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학교에 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아들도 흔쾌히 부모의 결정에 동의했다고 한다. 최근 양씨가 뇌경색 진단을 받고, 김씨도 아흔을 넘기면서 부부는 기부를 서둘렀다. 고려대에 기부하기로 한데는 아들 영향도 있다. 큰아들 김경덕(58)씨는 고려대 토목공학과 79학번이다. 
 
양씨는 "다들 쉰 살이 넘었고, 집도 한 채씩 장만했으니 부모 도움 없이도 살만한 수준이 됐다"고 했다. 부부 거실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TV 옆에는 큰손자의 미국 예일대 법대 졸업식 사진이 놓여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자녀가 아쉬워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양씨는 한참 자녀 자랑을 했다. 
 "우리 큰 며느리는 이화여대를 나왔는데 생활력이 정말 강해요. 마음씨도 고와서 애들도 얼마나 잘 키웠다고요. 큰손자는 키가 180㎝가 넘는데 인물도 얼마나 좋은지…"
 
부부의 아파트에 있는 소파와 장롱은 색이 바래있었다. 소파는 40년전 양씨가 언니에게서 얻은 것이고, 장롱은 부부가 40년 전 서울 종로 파고다가구점에서 장만한 '생애 첫 옷장'이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옷을 종이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차도 없다.
 
6년째 부부의 집안일을 돕는 이옥희(58)씨는 "두 분 모두 쓰고 난 비닐봉지 한 장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신다."고 했다. 양씨가 입은 라운드 티셔츠는 30년, 바지는 20년 된 것이라고 했다. 거실에는 옷이 든 종이 상자도 있었다. 입으려고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 온 것이다.
 
노부부 소유 건물에는 카페와 식당 등 점포 20여 개가 입주해 있다. 임대료를 크게 올리지 않아 대부분 20년 이상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1977년부터 노부부의 건물에서 족발가게를 운영해 온 이준희(76)씨는 "40년 넘게 봐왔지만 화려하게 옷을 입거나 화장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청량리에서 임대료 갈등 없이 상인들이 한자리에서 이렇게 오래 장사한 건물은 여기밖에 없다. 존경스러운 건물주"라고 했다.
 
당시 고려대 관계자가 "어렵게 모은 돈을 한 번의 기부로 내놓는 게 아깝진 않으냐"고 하자 양씨는 준비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평생 '노랭이(구두쇠)' 소리 듣던 나 같은 밑바닥 서민도 인재를 기르는데 보탬이 될 수 있구나, 이 생각에 정말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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