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 기자] 중세 말기 피렌체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345년과 1346년 피렌체를 비롯한 토스카나 지방은 대홍수의 악몽을 겪어야 했다. 곡물 가격은 급등했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사람들의 면역력은 급감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348년 여름 피렌체에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다.
 
감염된 사람은 겨드랑이, 목, 사타구니 림프절이 고통스럽게 부어오르는 증상을 보이다가 닷새 정도 후에 치명적 상태를 맞았다. 치사율은 60%가 넘었다. 도시는 초토화되었다. 불과 몇 달 만에 피렌체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흑사병은 이후 당시 유럽 전체 인구 약 1억 명 가운데 25%인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피렌체의 소설가이자 인문주의자 지오바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는 페스트가 세상을 어떻게 황폐화하는지를 목격했다. 살아남은 그는 1351년 <<데카메론>>을 완성했다. 보카치오는 피렌체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흑사병에 희생되었다고 기록했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모인 7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이 들려주는 100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를 탈출해 2주 동안 피에솔레의 시골 마을 별장으로 온 10명의 남녀가 각자가 내놓는 하루 한 가지씩의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남녀가 모여 앉아 경험담을 나눈 셈이다.
 
<데카메론>은 중세 말 기독교의 탐욕과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으면서 근대문학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시대와 언어를 막론하고 ‘고전문학선집’에서 빠지지 않는 이 소설은 ‘고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노골적인 성적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덕분에 1970~80년대 청소년들은 중세 수도사와 귀부인 또는 수녀들과 정원사의 성적 유희를 읽으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도 했다.
 
보카치오는 페스트 유행 이전 피렌체 사람들은 지인이 사망하면 경건한 장례를 치렀지만, 페스트는 한순간에 모든 삶을 바꿔놓았다고 기술했다. 
사람들은 죽은 이에 대한 동정심은 고사하고 시체로부터 병이 옮지 않을까를 걱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카치오는 어떤 인간의 지혜도 무서운 전염병을 예방할 수 없다는 현실, 인간의 무력함을 고백하였다.
 
처음엔 격리고 방역이고 하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무기력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신의 분노에 의한 징벌로 해석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북부 베네치아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처음으로 격리와 방역의 개념이 실천되었다. ‘방역(防疫)’을 뜻하는 영어 어휘는 ‘quarantine’이다. 1377년 베네치아에서는 흑사병에 걸린 환자가 나오면 30일간 격리했다. 그러나 후일 격리 효과를 높이기 위해 40일(이탈리아어로 quarantenaria)로 연장되었다. 여기서 오늘날 ‘방역’을 뜻하는 ‘쿼런틴’이란 단어가 유래했다.
 
흑사병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유럽인들은 전염병 수준을 넘어선 신의 징벌이라 믿었다. 한편으로 신에게 구원을 빌었지만 유럽 인구의 1/4이 희생되자 교회와 신에 대한 믿음을 거두기 시작했다. 교회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왕권은 강화되었다. 흑사병 대유행을 끝낸 것은 기도가 아닌 방역이었다. 각국, 각 도시 단위로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방역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여행자는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흑사병은 중세 세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많은 농부들이 사망했다. 일손이 달리면서 농노들의 임금도 올라갔다. 농노들은 해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영주들은 파산 사태를 맞아야 했다. 흑사병은 한마디로 중세의 봉건체제가 무너지는 촉발제가 된 셈이다.
 
신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생각 체계가 바뀌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흑사병의 앞선 피해지였던 피렌체를 중심으로 재생, 부흥을 뜻하는 르네상스가 태동한 것은 어쩌면 역사적 필연성의 결과였는지 모른다. 동시에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이 우주를 바라보는 근원적 시각 자체를 바꿔놓았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바이러스는 끝없이 변한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愚問이다. 영원히 극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단지 매번 나오는 변종의 피해 규모가 달라질 뿐이다. 독감 예방주사나 변종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이 개발되겠지만, 근원적 극복과는 무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화이자와 모데나의 백신으로 현 코로나 사태가 일시적 진정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언제 어디서 어떤 숙주에 의해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있는지를 사전에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 어느 도시도 새로운 우한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공포에만 빠질 필요는 없다. 통시적으로 볼 때 인류는 흑사병과 콜레라, 천연두, 스페인독감,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예방책 강화와 긍정적 변화의 모멘텀을 얻어왔다. 르네상스로 인간 중심 세상을 열게 했고, 방역 시스템을 강화했으며 바이러스 
치료제 및 예방제를 찾아내게 한 동력도 기실 출발점은 고통과 비극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후 세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설령 코로나 대 전염병 사태가 크게 진정된다 할지라도...
 
첫째, 사람들은 마스크를 일상의 필수품으로 사용할 것이다.
 
둘째,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중을 접하게 되는 이동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셋째, 형식보다는 내용이 우선하는 소통이 정착할 것이다.
 
넷째, 위생 강화로 인해 질병이 줄고 평균 수명은 더 늘어날 것이다.
 
다섯째, 세계의 모든 산업은 보건, 위생, 헬스케어, 의료와 직간접으로 연결점을 갖게 될 것이다. 기존의 산업 생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오래지 않아 도태되고 말 것이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우선하는 소통은 무엇인가? 蛇足을 달자면 학교, 직장, 사회, 정치 나아가 국가 간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체나 참가자들은 종전과는 다른 철학으로 소통을 시작할 것이라는 뜻이다.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혁신’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모든 습관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당연하게 여겨온 일들이 모두 재고되어야 한다. 대면 문화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지만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굳이 그 현장에 가지 않아도 되고 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은 문화가 일상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관혼상제부터 학교의 수업 행태, 직장 생활, 정치적 이벤트에 이르는 거의 모든 일상사의 문화가 바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바라보는 코드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인문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1917~)은 명저 <전염병의 세계사>>란 책을 닫으며 이런 귀한 말을 남겼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의 운명과 함께할 것이며,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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