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2022년 예산안 및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영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나라살림은 5년 만에 200조 증가했고, 나랏빚은 400조 불어났다. 3년 연속 수입보다 씀씀이가 더 큰 적자재정이다. 
 
31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2022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내년 총지출은 604조4,000억 원으로 500조 원을 넘어선지 불과 2년 만에 600조 원을 돌파했다. 지출 증가율이 9.5%(2019년), 9.1%(2020년), 8.9%(2021년), 8.3%(2022년) 등 ‘9988’로 정권 마지막까지 확장재정을 고수했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코로나 위기를 완전히 종식 시키고, 확고한 경기 회복과 양극화 선제 대응을 위해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를 유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3년 연속 '적자 예산'을 편성하면서까지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한 배경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완전히 회복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국가채무가 400조 원 이상 급증하자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대 이상의 경제회복에 따른 '세수 호황'으로 내년 재정 수지가 개선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재정준칙'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지출 규모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가파라졌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100조 원을 넘긴 이후 노무현 정부 집권 시절인 2005년에 200조 원을 넘어섰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300조 원을 넘어선 후 2017년 박근혜 정부 시기에 400조 원을 돌파했다. 이후 문 정부 출범 3년 뒤인 2020년 500조 원을 넘긴 데 이어 600조 원 시대를 여는 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총지출 규모가 총수입을 뛰어넘는 적자 예산도 3년 연속 이어질 전망이다. 문 정부가 나라 곳간을 풀었지만, 경기 둔화와 코로나19 위기 등으로 세수가 부진하면서 지출과 수입의 균형이 맞지 않은 탓이다.
 
다만 내년에는 예상보다 빠른 경기회복에 따라 세수 여건이 개선되면서 국세수입(338조6,000억 원)이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보다 7.8%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19.8% 늘어난다. 국세수입 증가에 힘입어 총수입(548조8,000억 원)도 2차 추경보다 6.7%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 세정지원이 내년으로 이월되는 4조5,000억 원을 제외하면 국세수입 증가율은 6.3% 정도다.
 
2차 추경과 비교하면 내년 법인세수는 12.6% 증가한 73조8,000억 원 걷힐 것으로 추산된다. 소득세(105조 원)와 부가가치세(76조1,000억 원)도 각각 5.6%, 9.7%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식 및 부동산거래 등 자산거래는 안정을 찾아 양도소득세(22조4,000억 원)와 증권거래세(7조5,000억 원)는 각각 11.9%, 9.0% 감소할 것으로 봤다.
 
세수는 국가 위기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회복 시기인 1999년과 2000년에는 각각 세수가 전년 대비 11%, 22% 늘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과 2011년에도 전년보다 각각 8%씩 세수가 증가한 바 있다.
 
세수가 더 걷히면서 재정수지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 규모는 올해 본예산(-75조4,000억 원)보다 19조8,000억 원 개선된 55조6,000억 원으로 전망된다. 2차 추경안(-90조3,000억 원)보다는 34조7,000억 원 축소된 규모다.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4.4%(2차 추경 기준)에서 -2.6%로 낮아진다.
 
반면 빠르게 몸집을 불렸던 국가채무는 내년 1,000조 원을 넘어선다. 2016년 626조9,000억 원이었던 나랏빚은 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660조2,000억 원, 2018년 680조5,000억 원, 2019년 723조2,000억 원, 2020년 846조9,000억 원, 2021년 965조3,000억 원에 이어 내년 1,068조3,000억 원까지 증가한다.
 
▲ 문재인 대통령
이는 역대 정부보다 빠르다. 노무현 정부(2003~2008년) 동안 국가채무는 143조2,000억  원, 이명박 정부(2008~2013년)는 180조8,000억 원, 박근혜 정부(2013~2017년)는 170조4,000억 원 증가한 반면 문재인 정부(2017~2022년)는 임기 5년 동안 408조1,000억 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올해 47.3%에서 내년 50.2%로 치솟은 뒤 2024년 53.1%, 2024년 56.1%에 이어 2025년에는 60%에 육박한 58.8%까지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정 악화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지는데 '재정준칙'은 뒷전인 모양새다. 정부는 재정 악화를 경계하기 위해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지난해 10월 국가채무비율을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했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GDP 대비 60%, 통합재정수지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으로 국가채무비율을 60%로 나눈 값과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로 나눈 값을 곱해 1.0을 넘지 않는 게 핵심이다. 내년 예산 기준으로 보면 0.72로 재정준칙 기준에 들어맞는다.
 
정부는 내년 재정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재정건전성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은 "경제회복과 성장을 촉진하고 세수증대 기반을 창출해 재정건전성 개선으로 귀결되는 선순환구조가 확고히 자리 잡도록 하겠다"며 "재정준칙 범위 내에서도 재정 총량 지표를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지출 증가율이 가파른 만큼 재정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경계했다. 아울러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재정 긴축도 강하게 해야 한다"며 "재정 적자가 늘고 국가채무가 많이 증가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겠다는 분석과 고민이 이 정부는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몇 년에 걸쳐 높은 지출 증가율을 보이고 국가채무도 증가하는 등 국가재정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며 "재정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재정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재정준칙 도입 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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