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충주시장/시사플러스 칼럼니스트
가족간에도 룰(rule), 원리가 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가 스스로 살아 갈 수 있을 때까지 먹여주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보호한다. 닭도 보면 병아리가 어느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모성애가 대단하다. 새끼 보호를 위해선 독사에게도 덤벼든다. 하지만 병아리가 커서 스스로 살아가야 할 때가 되면 따라오지 못하도록 쪼아 버린다. 자력으로 살아가라고 말이다.
 
자식을 교육할 때도 개념정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자식이 성장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교육하고 돌보면 된다. 자식이 성장하여 취업하고 결혼하면 부모의 역할은 종료된다. 자식이 그 이상을 바래서도 곤란하다. 부모가 그 이상 보호하려는 것은 간섭에 불과하다. 상속에 대한 개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자식이 커서 효도하길 바라는, 자식에게 의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면 자신이 먼저 부모에게 효도를 했어야 했다. 가족간에는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따라하며 배운다. 자신은 효도를 하지않고 자식이 효도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족간의 교육은 솔선수범해야 된다. 자신은 TV를 보며 자식에게 공부하라면 말을 듣지 않는다. 본인이 습관적으로 책을 읽으면 애들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가족간에는 보고 따라하는 묘한 원리가 있다. 그래서 결혼할 때 가문과 그 집안의 가풍을 보는 것이다. 가족간에도 개념없이 살다보면 이기적인 마음에 갈등이 심해질 수 밖에 없다.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생일날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생일을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생일을 챙겨주는 의미를 설명해 줘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납득이 가야 한다.
 
요즘은 핵가족시대다. 결혼하면 독립한다. 그리고 각자 산다. 자녀가 모두 출가하면 부모도 마찬가지로 따로 살 수 밖에 없다.
 
노후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거동이 불편하여 혼자 살 수 없으면 요양원을 이용하게 된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케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요양원이 인생의 필수코스가 된 것이다.
 
요양원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요양원에 대해 정부가 지원도 하고,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요양원 시스템의 수준은 곧 그 나라의 노인복지 시스템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개념정리를 분명히 하고 요양원의 시스템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 명절문화도 혁신이 필요해
 
명절 문화도 핵가족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특히 대가족, 종가집에서는 명절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차례는 5대조 까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분의 부모까지만 모시면 된다. 그러면 모이는 가족이 대폭 줄어든다. 가족도 분가하여 명절 차례를 지내는 것이 관례화 돼야 한다.
 
막내 아들의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잘 모시면 되고 저희는 엄마 아빠만 잘 모시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오히려 신세대들이 개념정리가 확실하다.
 
코로나 시대가 돌입하여 명절에 온가족이 모일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가집 며느리는 이를 더 좋아한다. 오히려 정부에서 철저히 단속하길 바란다.
 
옛날 명절문화를 풍습이니까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다. 차제에 명절문화도 개념정리를 분명히 해볼 필요가 있다.
 
명절은 핵가족 시대에 걸맞게 살아있는 어르신 중심으로 모이면 된다. 차례에 너무 신경쓸 필요가 없다. 제사가 따로 있지 않은가? 선조들은 가족에 따라 일년에 한번 정도 벌초나 시향제를 올리며 모두 모여 친목을 도모하면 된다.
 
조상들이 왜, 명절을 만들고 차례를 올렸을까? 옛날에는 대가족 제도다. 흩어져 사는 가족끼리 1년에 두 번은 만나 차례를 올리며 가족간의 차례, 순서, 서열의식을 가르쳐 줬다. 가족끼리 만나 화목하게 지내고 서로 도우며 살라는 지혜로운 풍습이 바로 명절인 것이다. 그런데 가족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명절이 가족을 불편하게 하는 행사가 되어선 곤란하다.
 
명절도 가족간에도 개념정리를 분명히 하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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