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 후흑(厚黑)이란 단어가 있다. '후(厚)'는 얼굴이 두껍다(面厚)는 것이고, '흑(黑)'은 속이 시커멓다(心黑)는 말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을 줄여 후흑이라고 흔히 쓴다. 주로 정치적 의미로 인용되기도 한다. 
 
청나라 말, 중국의 사회개혁가 리쭝우(李宗吾)가 1911년 쓰촨성 청두(成都)의 공론일보에 실은 글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1917년에는 청두의 국민공보에서 후흑학(厚黑學, 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됐다.
 
마오쩌둥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한 이 책을 요약하자면 1단계는 낯짝이 성벽과 같이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다. 2단계는 낮짝이 두꺼우면서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빛난다. 3단계는 낯짝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3단계는 후흑의 극치로 한없이 뻔뻔하고 음흉하면서도 ‘순결한 정의의 화신(불후불흑·不厚不黑)’으로 나타난다고 리쭝우는 말한다. 이런 상승(常勝) 무공을 구사하려면 ‘후흑을 행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항상 정의와 도덕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도 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은 권력과 민간 업자들이 결탁해 국민 재산을 약탈한 '도둑 정치(Kleptocracy)' 그 자체다. 
 
경실련은 대장동 개발 사업에 대해“인허가권자인 성남시는 부정부패를 차단하기보다 특혜 이익의 지원자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정의했다. 대장동 도둑 정치의 처음과 끝에 ‘설계자’이자 최종 인허가권자인 이재명 지사는 연루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재명 지사는 9일 경기 경선 뒤 기자들과 만나 후보는 대장동 개발 의혹과 관련해 부정부패와 연관된 민간 이익의 상당 부분을 환수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청렴서약을 받았는데, 최근 부패 행위의 상당한 증거가 나왔다"며 "청렴서약도 대장동 설계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부패가 있다면 협약 자체가 무효가 되므로, 민간 몫 개발이익조차도 비용을 뺀 나머지를 환수할 길이 열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불후불흑의 핵심 기법을 구사하는 이 지사의 '내공'에 감탄이 절로 난다. 문득 2000년 국내에 번역된 스펜서 존슨의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란 제목이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오버랩됐다. 
 
'누가 대장동 치즈를 훔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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