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태섭 전 의원
[정재원 기자]  지난 8월 13일 자 <조선일보> 온라인판 기사에서 시작된 한 사건. 당시 신문 제목은  <"아들아" 소리도 외면… 중병 아버지 굶겨 사망케 한 20대 아들>이었다. 해당 기사를 지난 3일,  <"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이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서 더 깊이 들여다 봤다. 
 
56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다룬 기사를 보고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변호사 시절 경험을 소개했다.
 
다음은 해당 글 전문이다.
 
<사건 이야기>
 
페친 박상규님이 셜록에 보도한 내용(아래 아래 포스팅 참조) 보고 떠오른 옛날 사건 이야기
 
검사나 변호사로 일할 때 언론에 연일 보도되는 큰 사건들도 많이 다뤄봤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미성년자나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관계된 사건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중 하나. 
 
내가 변호를 맡았던 사건의 담당 경찰관이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는 전화를 했다. 경찰관이 경찰서 밖에서 만나자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라서 의아해 하면서 만났는데, 뜻밖에도 자기 조카가 구속되어 있다고 하면서 변론을 부탁해왔다. 형편이 넉넉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경찰관이 부탁하는 사건을 무료로 해주면 뇌물이 될 수도 있다. 적절한 수임료를 약정하고 구치소로 가서 조카라는 A를 만났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젊은 친구. 
 
살아온 사연을 들었는데 참 딱했다. 
 
어려서 야구 선수를 하던 A는 중학생 때 큰 부상을 당해서 운동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 아들을 프로 선수로 키우겠다고 극성스럽게 따라다니던 아버지가 그 충격 때문인지 정신질환에 걸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집을 나가 버리고 A는 졸지에 아버지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친척 중에 핸드폰 대리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A는 그곳에 취직을 했다. 학교를 그만 두려고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면서 (가라로) 골프 특기생으로 처리를 해줘서 출석을 거의 못하고도 졸업장을 받았다. 물론 골프채를 만져본 일은 없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아침 일찍 일 나갔다가 밤에 가게 문 닫고 집에 가면 아픈 아버지와 중학생 동생이 있다. 월급을 받아도 간신히 세 식구 입에 풀칠하는 정도. 어쩌다 노는 날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잔다. 
 
그러다가 스무살이 된 어느 날 동네 선배와 의기투합해서 큰 맘 먹고 술을 마시러 간다. 술집이라야 종로 통에 있는 싸구려 호프집. 그곳에서 난생 처음 소주와 맥주를 많이 먹은 A는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구속된 것이다. 그 전에 전과 같은 건 전혀 없고. 
 
A는 억울하다고 했고 나도 이 사건에 대해서 무죄를 확신했다. 나름 열심히 변론을 했는데 1심에서 징역 4년이 나왔다. 
 
유무죄 판단이야 다를 수 있는데 형량이 예상 밖으로 셌다. 가정형편도 그렇고 초범인데. 너무 미안하고 안 되어서 항소심은 돈도 받지 않고 변론을 했다. 중형을 선고받은 A는 완전 절망한 표정이고. 
 
그때 A의 친척들이 나섰다. 사건을 부탁한 말단 경찰관을 비롯해서 다들 넉넉치 않은 사람들인데 저금을 깨서 깜짝 놀랄만한 돈을 만들어 왔다. 피해자가 합의를 안 해줬기 때문에 공탁을 하고 또 열심히 변론을 했다. A에게는 만약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받는다고 해도 여러가지 정황상, 그리고 친척들의 정성으로라도 대폭 형량이 깎일 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결과는 징역3년6월. 온 집안이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애를 썼는데 2심 재판부는 단지 6개월을 깎아준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나는 무죄를 확신했지만, 실제로 유죄일 수도 있고 중형을 선고할만한 양형 조건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고 내용을 들었을 때 가슴이 답답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A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항소심 최후진술 때 A는 억울하다고 울먹였다. 실제 억울했는지 아니면 사실은 범행을 저질렀는지 신이 아닌 이상 내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고등학교 1학년 이후 제 정신이 아닌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먹여 살려여 했던 애가, 정말 인생 최초로 큰 맘 먹고 놀러 나갔던 날 사고를 치고 몇년 징역을 살게 되면 어떻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있을까. 그 이후로 A를 본 적은 없다. 
 
A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소년범 또는 갓 성년이 된 나이로 입건된 친구들 대부분은 증거도 확실하고 본인들도 자백을 한다. 전과가 쌓여온 놈들도 많고 대해보면 되바라진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런 녀석들이 법정에서 맥락없이 갑자기 서럽게 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과연 내가 저 친구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년범 처벌 강화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세상을 밝게 보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사는 세계는 결코 공평하지 않고 인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 한번의 제대로 된 휴식도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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