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포럼 대표/지에스리테일 고문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먼 곳에 있어도 변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러 일편단심 민들레라고도 한다. 
 
민들레는 조용필의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에서 보듯이 여러 문학작품에서도 즐겨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한사람만 바라보고 일편단심(一片丹心) 기다리는 사람에게 쓰일까?
 
오늘은 조용필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 가사에 얽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 한다.
 

민들레!! 밟혀도 밟혀도 끈질긴 자생력으로 금빛 찬란한 꽃을 피우는 야생화.

민들레의 근성(根性)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이죠.

이 꽃은 큰 뿌리 하나를 곧게 땅속 깊게 내리고 옆으로 실뿌리가 뻗어 있으나 가늘고 빈약하지요.
그러나 큰 뿌리 하나가 땅속 깊게 뿌리를 내림으로써 바람에 흔들려도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요.

조용필은 1981년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자가 이주현이라는 여성입니다.

당시(1981년) 72세의 이여사는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 하며 쓴 자전적인 이야기를 신문에 투고(投稿)했는데 이를 본 조용필이 가사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을 가사로 다듬어 노래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녀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50여년 전 그녀는 동아일보 국장이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는 바람에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노점 좌판 등을 하며 어렵사리 살아온 그녀는 평생 모은 돈을 남편이 다닌 동아일보에 기부해서 남편 이름을 붙인 <수남 장학금>을 만듭니다.

1981년 4월28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햇빛 본 할머니의 꿈'은  이주현 여사의 일편단심 스토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남(水南)! 이렇게 불러볼 날도 이제 오래지 않겠지요. 어언 접어든 나이가 고희(古稀)를 넘겼으니 살 날이 얼마나 되리까. 당신을 잃은지도 30년 성상, 밟혀도 밟혀도 고개를 쳐드는 민들레 같이 살아온 세월, 몇 번씩이나 지치고 힘에 부쳐 쓰러질 듯 하면서도 그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겨 왔습니다."

이 여사는 노구(老軀)를 무릅쓰고 1년에 걸쳐 집필한 원고 1천여장 분량의 '일편단심 민들레야'의 첫 머리에 생사를 알길 없는 남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내게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정(情)이 없었다면 붓대를 들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자전(自傳)의 내용을 다듬어서 쓴 노래말은 이렇습니다.

님주신 밤에 씨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꺽이니
나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노래 중 ‘그 여름의 광풍(狂風)'은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청천벽력 같은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낙엽지듯 가시었나'는 그해 가을 납북된 남편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천국에 간 남편을 바라보며 그리워 함이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남편이 떠나면서 "걱정하지마, 잘 다녀올게!" 라고 말했던 그 목소리였습니다.

남편 납북(拉北)시에 41세 여인은 그 험한 세월을 이겨냈습니다. 지난 30년의 절망과 피 눈물 속에서도 그녀가 말했듯 '일편단심 붉은 정열'로 버티며 어린 것들을 키워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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