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 충주시장/시사플러스 칼럼니스트
코로나19로 인해 벌써 2년째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일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가집 며느리는 이를 더 좋아한다. 오히려 정부에서 철저히 단속하여 모이지 않길 바란다.
차제에 옛날 명절문화를 풍습이니까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명절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명절 문화도 핵가족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특히 대가족, 종가집에서는 명절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차례는 5대조(祖)까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분의 부모까지만 모시면 된다. 차례를 올리는 것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제사가 따로 있지 않은가? 온 가족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시향제를 활용하면 된다.
조상들이 왜, 명절을 만들고 차례를 올렸을까? 옛날에는 농경사회다. 가족이 함께 일하며 사는 대가족 공동체 사회다.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 가족끼리 질서, 서열이 분명해야 조직적이고 일도 효율적이다. 명절에 조상께 차례를 올리면서 가족간에 차례, 순서, 서열의식을 가르쳐 줬다. 이를 통해 살아 있는 어른을 모시는 효(孝)도 체득케 한 것이다.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돕고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산 교육장이 바로 명절이다. 이런 가족문화, 사회교육이 오래 지속토록 명절이 풍습화 됐다.
요즘은 가족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명절이 오히려 가족들을 불편케 한다. 명절만 되면 귀성전쟁(?)이 벌어진다. 시대에 걸맞게 명절도 개념정리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막내 아들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잘 모시면 되고, 저희는 엄마 아빠 잘 모시면 되지 않냐고 한다. 오히려 신세대들이 개념정리가 확실하다.
● 가족간에도 룰(rule), 원리가 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가 스스로 살아 갈 수 있을 때까지 먹여주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보호한다. 닭도 보면 병아리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모성애가 대단하다. 병아리 보호를 위해선 어미 닭이 독사에게도 덤벼든다. 하지만 병아리가 커서 스스로 살아가야 할 때가 되면 따라오지 못하도록 쪼아 버린다. 자력으로 살아가라고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성장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교육하고 돌보면 된다. 자식이 성장하여 취업하고 결혼하면 부모의 역할은 종료된다. 자식이 그 이상을 바래서도 곤란하다. 부모가 그 이상 보호하려는 것은 간섭에 불과하다. 상속에 대한 개념도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가족간에는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보고 따라한다. 결혼할 때 그 집안의 됨됨이를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부모를 따라하며 성격과 습성이 자리잡기 때문이다. 가족간에도 개념없이 살다보면 이기적인 마음에 갈등이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요즘은 핵가족시대다. 결혼하면 독립한다. 그리고 각자 산다. 자녀가 모두 출가하면 부모도 마찬가지로 따로 살 수 밖에 없다. 노후 거동이 불편하면 누구나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요양원이 인생의 필수코스가 된 것이다.
요양원에 대해 국민적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요양원에 대해 정부가 지원도 대폭 늘리고,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요양원의 수준은 곧 그 나라의 노인복지 시스템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개념정리를 명확히 하고 요양원의 수준을 꾸준히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명절도 가족간에도 개념정리를 명확히 하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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