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현지시간) 몰도바 팔란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피란한 한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걷는 모습.
[정재원 기자] 러시아의 침공 개시 22일째인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백만 명이 피란하는 가운데 나라를 지키려 역으로 귀국하는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양국 간 협상도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양상은 지상전에서 막힌 러시아군이 공중폭격에 의존도를 높이면서 민간인 사망이 급증 중이다. 반대로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군에 1조 원이 넘는 무기를 지원 중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의 전쟁수행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돕기로 했다는 외신 보도가 최근 나왔다. 이 보도에 대해 중국, 러시아는 물론 미국 정부도 확인하지 않아 왔다. 그런데 17일(현지시간)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런 정황이 있음을 처음 확인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할 무기를 직접 지원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내일 시 주석과 통화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지원하기 위해 취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며 "우리는 (중국에)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과연 러시아를 도울 거냐도 국제사회의 큰 관심사다. 우리 시간 오늘 저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간 통화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피란 행렬 속 32만 명 나라 지키려 귀국
 
▲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이르핀 마을에서 노인을 들것에 실어 임시 통로를 건너고 있다. 이곳 다리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돼 주민들은 임시 통로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 수는 총 310만 명을 넘어섰다. 라오프 마조우 UNHCR 고등판무관보는 트위터에서 지난 3주간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 수가 52만 명에서 310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국경경비대는 트위터를 통해 "32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국적자가 러시아의 침략이 시작된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달 24일 새벽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했다.
 
국경경비대는 "우리의 남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한다"라며 "우크라이나는 다른 모든 국민처럼 자유로워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간인 대피는 이어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장기 고립 이후 얼마 전부터 민간인 대피가 시작된 마리우폴에서는 이날까지 약 3만 명이 탈출했다고 한다. 마리우폴을 포함해 합의된 대피로 9곳 중 8곳이 정상 작동 중이다.
 
반면 희생자 보고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날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에서는 미국 국적자 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미국인 사망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 정부 쪽에서는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나 사망 경위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CNN은 우크라이나 내무부를 인용, 사망자가 미네소타 출신 1954년생 제임스 휘트니 힐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체르니히우 경찰 당국은 러시아군이 비무장 시민을 포격했다며 사망자 중 미국인이 포함됐다고 했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칭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동의한다고 했다.
 
하르키우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동부 메레파에서는 이날 러시아군이 학교와 주민 시설에 공습을 가해 20명 이상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다는 소식이 현지 당국자발로 전해지기도 했다. 10명은 중태라고 한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이날 러시아 침공 개시 이후 16일 자정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 780명, 부상 1,252명 등 총 2,032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실제 사망자는 더 많으리라 예상된다.
 
민간인 대피소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마리우폴 극장에서는 구조 작업이 이어졌다. 이 극장은 3층 규모로, 러시아의 폭격을 받아 무너졌으나 방공호는 무사했다고 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까지 130여 명이 구조됐다.
 
▲ 지난 10일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한 남성이 파괴된 거리를 자전거를 끌며 걷고 있다.
러시아는 공격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날 우크라이나 상황을 두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는 마리우폴 극장 공격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어제 러시아군이 민간인 수백 명이 숨어있던 마리우폴 극장에 강력한 폭탄을 투하했다"라며 "(당시) '어린이'라는 뜻의 러시아 단어가 극장 밖에 적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글자는) 하늘에서 볼 수 있게 컸고 흰색이었다"라며 "하지만 러시아군은 어쨌거나 폭격을 가했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는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을 향해 "살인을 멈춰라"라고 했다.
 
페릿 호자 유엔 주재 알바니아 대사는 "처음에는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동이었다. 그 후에는 모스크였다. (그리고) 어제, 러시아는 천 명에 가까운 주민의 대피소였던 마리우폴 드라마 극장을 폭격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어로 '어린이'라는 글자가 극장 밖 바닥에 크게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 폭격을 받아야만 했다"라고 개탄했다. 아울러 러시아가 의료 시설 공격을 전술로 삼고 있다고도 했다.
 
이날 잇따르는 비난 속에서, 러시아는 당초 오는 18일 표결을 추진하려던 자국 작성 우크라이나 인도주의 결의안 초안을 폐기했다. 해당 결의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담지 않아 논란이 됐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이를 "실패할 운명이었던 우스꽝스러운 결의안"이라고 칭하고, "러시아가 정말로 인도주의 위기를 우려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을 향한 공격을 멈추기만 하면 된다"라고 일갈했다.
 
피란과 포격, 국제 사회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협상단은 휴전을 위한 협상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이날도 협상이 이어지리라며 "다양한 경로로 (협상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 그는 다만 자국은 의지를 보였지만 우크라이나 측에서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문서 서명과 모든 조건에 대한 명확한 협상, 그리고 그 이행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우 빨리 멈출 수 있다"라고 했다. 또 "우리의 조건은 명명백백하다"라며 우크라이나가 느긋한 태도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측 협상단 일원인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각자의 입장을 고수한다"라며 며칠에서 한 주 반 정도 사이에 평화 협정 초안 작성에 근접하리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울러 이날 트위터를 통해 "(협상단) 내부 인사가 아닌 현역 협상 절차 중계자들(active commentators of the negotiation process' who are NOT inside)에게 부드럽게 권유하고자 한다. 전쟁을 치르는 나라 안에 거짓말을 퍼뜨리지 말라"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 14일부터 나흘에 걸쳐 이어진 협상 기간 일부 언론에서는 협상 진행 상황으로 우크라이나 중립 선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 외국 군사 불유치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러시아도 오스트리아, 스웨덴식 중립 비무장국 지위 등을 거론 중이다.
 
포돌랴크 고문은 이날 "협상은 복잡하다.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르다"라며 "우리로서는 근본적인 문제는 침범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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