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가운데)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을 만나고 있다.
[정재원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 국가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서방 분석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핵 공격 전환 기준이 모호해 핵 사용 가능성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침공 전부터 극초음속 미사일인 '킨잘'과 같은 최첨단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면서는 서방 세계의 개입 시 "역사 상 볼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 핵 부대에 '특별 전투 태세'를 확실히 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또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최근 두 차례나 핵 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같은 러시아 지도부의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전술적(비전략적) 핵 사용 전환점이 어느 지점인지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했다. 비전략적 핵 사용이란 위력을 낮춰 적의 군사 목표를 정밀 타격하거나, 국지적 수준으로 핵공격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페트르 토피치카노프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는 러시아 지도부가 전술적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는 레드라인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면서 "러시아 지도부는 모호함의 가치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지도부가 어떤 종류의 정보를 얻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러시아 지도부가 얼마나 합리적인가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 같은 모호함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타격 가능성이나 위협 고조와 관련해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마라톤 정책 이니셔티브의 설립자 엘브리지 콜비는 '점차적 감소를 위한 확전'(escalate to de-escalate)으로 알려진 원칙에 기초한 비전략적 핵 공격의 요점은 전장에서 규칙을 바꾸는 것이고, 상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푸틴은 재래식 부대의 전투를 보호하기 위해 더 작은 탄두를 사용할 수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목표물이 될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서방세계가 진짜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냉전 시기 비전략적 핵무기의 사용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올해 초 발간된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 대한 핵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WSJ는 보도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로 인한 러시아군의 쇠락 이후 비전략적 핵무기 등 핵 관련 무기에 크게 의존해 왔다고 한다. 특히 2008년 푸틴 대통령의 군 현대화 이후 핵무기는 여전히 러시아군의 중심 축으로 남아있고, 러시아는 미국과 대등한 존재감을 갖게 됐다고 WSJ는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제 비전략적 핵무기 사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전면적 핵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 중이다.
 
한스 크리스텐슨 미국 과학자연맹 핵 정보 프로젝트 책임자는 비전략적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전면적으로 빠른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양측 모두 전면적인 에스컬레이션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한적인 방법을 찾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80년 만에 처음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방관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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