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특혜는 아파트 분양시 로열층 독식’

최근 경기도 안양의 한 조합아파트 이중분양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재건축 업자를 통해 그동안 관행처럼 돼 온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는 “경찰의 집중 단속으로 재건축 시장이 일시적으로 얼어붙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미 비리 사슬이 조합-설계업체-시공사-구청, 게다가 구의회나 정치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어 그 고리를 단칼에 끊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재건축 시장을 잡기 위한 건설사들의 경쟁이 격화되다 보면 법망을 빠져 나가기위한 방법 또한 더욱 교묘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 아파트 단지가 크면 클수록 철거 공사의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마련. 서울 강남 일부 지역 대단듸 아파트 단지는 사업비만 1조 원이 넘고 철거 공사 규모만 해도 수백억 원대를 넘나들기 때문에 이를 따내기 위한 용역업체의 로비젼은 불꽃이 튀게 마련이다.

첫 단추는 재건축조합을 구성할 때 시작
재건축 비리 연결고리의 시작은 재건축조합을 구성할 때 무자격 조합장 선임으로 시작된다.
재건축조합 정관상 조합 간부의 자격은 2년 이상 해당 지역에 주택이나 아파트를 소유하고 2년간 거주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막대한 이권을 노리고 조합장이나 조합 간부가 되려는 사람들치고 이런 자격요건에 들어맞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다 보니 시공사나 컨설팅업체는 자신들이 손쉽게 ‘부려먹을’만한 사람을 조합장으로 내세우기 위해 이들에게 돈을 대주거나 사실상 집을 사주는 경우도 생긴다.
조합장과 간부들이 철거용역 업체 선정→설계업체 선정→시공사 계약 등 사업단계별로 각종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받아 챙긴다는 것은 재건축시장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일이다. 재건축조합장 노릇을 하기 위해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조합장이나 간부로 내세운 이들에 대한 특혜의 결정판은 뭐니뭐니해도 완공 후 특혜 분양이다. 실제로 조합 집행부 간부들에 대해서는 동과 호수 추첨을 거치지 않고 로열층 가구에 대한 우선 분양권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합 정관에 이와 관련해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조합원 명부를 보면 우선 배정을 받을 사람들 이름 옆에는 ‘X’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조합장 측근으로 통하는 일부 대의원까지도 특혜 분양 대상으로 분류돼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대의원들 중에서도 뒷말이 나올 것 같으면 완공한 뒤에 몇 백만 원씩 드는 베란다 새시라도 무료로 해 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조합 구성 단계에서부터 각종 인허가권을 가진 구청 공무원을 한두 명 끼워 넣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서울의 한 재건축 아파트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 조합원을 미리 이주시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기회를 잠재우기 위해 시공사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코디네이터’역할은 주로 컨설팅업체가 떠맡아
그 후 이 조합은 구청 소유의 땅을 공시지가보다 훨씬 비싸게 사주는 조건으로 사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구청은 버려진 땅을 비싸게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이 땅을 매입하는 데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조합원 부담으로 돌아갔다. 조합과 구청, 조합과 시공사 사이를 오가며 ‘코디네이터’ 노릇을 하는 곳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컨설팅업체들이다. 정부는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기 위해 2002년 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을 제정해 기존의 주택건설촉진법을 대체함으로써 재건축규정을 대폭 강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공사들이 재건축 사업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게 되자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것이 컨설팅업체다.
도정법에 따라 ‘정비사업자’라고 부르는 컨설팅업체들은 재건축 사업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 조합장이나 조합간부들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 사업 전반을 대행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그 중에서도 이들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는 구청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각 사업단계별 승인 및 허가를 받아내는 일. 이들 컨설팅업체를 ‘행정용역업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컨설팅업체의 능력을 재는 척도 또한 구청과 얼마나 밀착해 있냐는 것으로 판가름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컨설팅업체를 매개로 구청과 조합이 유착해 각종 특혜를 주고 받으며 금품을 챙기는 관행이 이어지다 보니 아예 일부 구청 공무원들이 퇴직 후룰 의식해 ‘경력 세탁’에 나선다는 점이다.
2개 이상의 조합이 난립해 서로 주도권 경쟁을 벌일 때에도 표면적으로는 두 조합간 싸움으로 비치지만 실제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컨설팅업체, 그리고 그 배후에 숨은 시공사가 사활을 건 수주전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돈을 철거업체에서 거액의 리베이트 챙겨

조합원 총회를 ‘일사천리식’으로 이글어가기 위해 서울 시내 재건축 조합원 총회를 찾아다니며 사회만 봐주는 전문 ‘사회꾼’까지 있다. 설령 치열한 세(勢) 대결과 지분 확보싸움 끝에 어느 한쪽이 승리하더라도 그 때부터 사용경비 등을 둘러싸고 또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다. 일반 조합원들은 조합간 다툼이 벌어져 사업 진행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합이 하나되기를 바라지만 일단 조합이 세력다툼을 시작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조합 설립 이전 단계인 조합 설립추진위원회 승인조차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활동한 기간에 써버린 경비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사례도 많다. 세력다툼에서 밀려 난 조합 추진위원회가 조합 통합 과정에서 기존 사용 경비를 떠안아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통합 협상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조합 설립인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조합측이 챙길 수 있는 ‘먹이감’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조합측이 목돈을 챙길 수 있는 첫 번째 사업단계는 철거용역이다. 철거업체 선정 과정에서 조합측이 수억 원을 받아 챙기는 경우도 흔하다는 것. 실제 계약을 50억 원에 했다면 계약서는 70억 원으로 작성하는 식이다.
아파트 단지가 크면 클수록 철거공사의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마련. 서울 강남 일부 지역 대단의 아파트 단지는 사업비만 1조 원이 넘고 철거공사 규모만 해도 수백억 원대를 넘나들기 때문에 이를 따내기 위한 용역업체의 로비전은 불꽃이 튀게 마련이다.
여기에 철거업체는 대부분 조합 결성 초기에 이미 결정된다. 문제는 조합 간부들이 철거업체에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업체는 이 돈을 뽑기 위해 철거자재를 팔아넘기면서 또 이들 처리업체에서 돈을 받아 챙긴다는 것이다.
처리업체는 건축폐기물을 불법 매립하면서 처리 비용을 절감하고···,한 마디로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연쇄적으로 잡아먹는 것처럼 비리사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철거공사비는 시공 규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렇기 때문에 시공사가 재건축 비리의 몸통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경찰이나 검찰 수사는 주로 조합 간부들에게 집중됐을 뿐 시공사를 정조준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시공사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재건축조합이 쓰는 대표적 수법은 설계 변경을 통해 사업비를 부풀리는 것이다. 심지어 가구 수는 줄어드는 데도 총사업비는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애초 21평짜리와 32평짜리가 있다고 하면 설계 변경을 통해 분담금을 올리는데, 일반 조합원들이 분담금 구조를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해 21평 분담금은 미미하게 올리고 32평 분담금만 엄청나게 올리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대형 평형을 선호하는 조합원들의 심리를 이용해 최종 단계에서 32평형 가구 수를 크게 늘리면 자연스레 사업비가 뛰게 돼 있거든요.”
이렇게 설계 변경은 대형 평형을 선호하는 조합원의 요구와 개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공사, 그리고 설계 변경 동의 및 승인이라는 ‘도장’을 움켜쥐고 있는 조합장 및 구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조합장은 시공사측의 설계변경 안(安)에 직인을 찍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리베이트를 챙깁니다. 설계변경을 승인해 주는 조건으로 구청 공무원에게 뒷돈이 들어가는 것은 예사죠. 결국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가는 결정을 해놓고 조합장만 이익을 챙기는 셈입니다.”
하지만 사업비가 올라가면 조합원 분담금도 올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반발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애초부터 분담금 규모를 부풀려 통보하기도 한다.

조합원의 불만 해소는 시공사가 맡아

주변 단지의 사례를 들어 “우리는 대기업인데도 중소기업에서 시공한 옆 단지와 분담금이 비슷하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분담금 규모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조합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시장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대부분의 조합원이 당장의 분담금 규모를 따지기보다는 재건축 이후 미래 차익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시공사는 일단 공사만 따놓으면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조합을 둘로 쪼개기 위해 위장 조합을 만드는 것도 결국 시공사와 조합의 이익이 일치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조합 규모가 커질수록 도로 면적이나 녹지 확보율 등에서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조합 입장에서는 분양 이익이 줄어들고 시공사 입장에서도 자금 회수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위장 조합을 만들어 조합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대의원들조차 조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다 보니 조합원에게 불리하고 시공사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제동을 걸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여기저기서 ‘뒷말’이 나오지만 결국 조합장이나 조합장 측근으로 통하는 일부 대의원들의 위세에 눌려 이러한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반대파 조합원의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시공사가 나서서 좀더‘적극적으로’대처하기도 한다. 아예 조합원을 미리 이주시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기회를 봉쇄하는 것이다.

입막음 위해 이주시키기도

주민에게 무이자 대출 형식으로 이주비를 지급하면 시공사에 금융비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주민들의 집단 반발에 따라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적어도 이렇게 주민들을 미리 이주시키면 조합 비리 등과 관련해 동네에 소문이 돌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이주작업을 마치고 나면 사업 추진이 지연될 때마다 조합원들의 불안감이 증폭돼 ‘분담금을 더 내더라도 빨리 입주했으면 좋겠다’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니 시공사로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이러저러한 방식이 ‘약발’을 내지 못해도 시공사와 조합 간부들은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재건축 현장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어깨’들. 물론 폭력조직과 연계된 이들이 과거처럼 실제로 재건축 현장 주변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재건축 사업 현장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것만으로도 시위 효과는 충분하다는 것이 조합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조합 집행부에겐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조합 운영에 반기를 든 조합원에게는 가시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어깨들을 동원해 마무리

 “총회에서 조합측에 불리한 발언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누군가 다가와 양쪽에 서 있는 걸 발견하게 되거든요. 짧은 머리에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버티고 서 있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놓고 조합 간부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만큼 총회에서 조합 집행부의 방침과 반대되는 발언을 하다가 회의장 밖으로 끌려 나가는 경우가 그런 예다.
결국 재건축 비리의 시나리오는 컨설팅업체와 시공사가 함께 짜지만 그 시나리오의 집행은 조합장과 간부들이 하고 최종 마무리는 이들 조폭 세력이 ‘깔끔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구청 공무원과 일부 정치권 인사가 그 중간 중간에 ‘촉매’로 작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재건축 비리는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과 시공사, 그리고 조합 3자가 철저한 공생관계를 형성함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공생관계는 서로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재건축 조합 관계자들이 ‘조합 비리가 터지는 이유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내분 밖에 없다’고장담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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