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CC 가평 세계캠핑대회 장경우조직위원장과 페레이라 총재
‘선서’가 뭐길래!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말하다.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비명에 가거나 구속되는 것으로 퇴임 후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정말 불행한 일이다.

이제 최초의 문민정부라며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던 김영삼 정부 역시 경제파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그 책임의 양상이 어떻든 간에 퇴임 후의 ‘초라한 전직 대통령’ 지켜봐야만 하는 우리의 불행은 아직 긑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적어도 모든 정치인이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있을 것이다 바로 ‘권력이 무상함’이다. 나 역시 그렇다. 대체 권력이란 얼마나 무상하고 허무한 것이란 말인가. 특히 백담사 청문회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쓸쓸함과 착잡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 끝까지 백담사에 계실 겁니까?

이한동 총무와 나는 백담사 측에서 제안한 장소로 나갔다. 아양우 씨, 안현태 씨, 허문도 씨 등이 나와 있었다.

“아니 청문회라니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그건 절대 안됩니다.”

첫 마디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예 가능성 자체를 잘라버리는 단호함이었다. 워낙 강경하게 나오자 막상 이한동 총무도 말문이 막혀버리는 듯 했다.

‘우리도 어떻게든지 그것만은 막아보려 최선을 다해봤지만,,,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그것만은 절대 안됩니다. 죽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결국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당에서나 청와대세서는 자꾸만 ‘다시 한 번’ ‘계속’을 요구해 왔다. 참 진퇴양난이었다.

이한동 총무는 다시 몇 차례 더 백담사 측을 만났다. 그러다 며칠 후 나는 이한동 총무의 지시로 다시 이양우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 곳에는 안현태 전 경호실장도 있었다. 그리고 앉자마자 터져 나오는 소리.

“우리 의견은 충분히 전했지 않소! 그 말이라면 그만 둡시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일이 뭐가 난단 말이요? 아무튼 안됩니다.”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럼...생각해 봅시다. 언제까지 백담사에만 계실 겁니까? 그럴 수는 없잖아요? 어떤 식으로든지 이걸 정리해야 만이 백담사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 정리가 바로 청문회인데... 사실 전향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료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순간 백담사 측은 동요되는 듯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못을 한 번 더 박았다.

“지금 나오시지 않으면 영원히 못 나오실 수도 있습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백담사 측이 입을 열었다.

‘좋소. 그럼 조건이 있소.“

“조건요? 좋아요. 그 조건이 뭡니까?”

“서면질의에 서면답변 하겠소!”

청문회에 서면질의 서면답변이라니! 한 고비 넘겼다 싶으면 또 다른 고비였다.

“그래도 명색이 청문회인데 어떻게 서면질의를 합니까? 그렇게 할 바엔 굳이 청문회에 나갈 필요도 없잖아요? 설령 그렇게 한다해도 그것으로 국민들의 민심이 잦아들 것 같습니까? 이왕 하시는 것...”

“아무튼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다시 결렬, 그 쪽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이에 낀 이한동 총무와 나로선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계속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득 과정이 반복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산을 넘어가는데...

“좋소! 그럼 일괄질문에 일괄답변으로 하겠소!”

일괄질문에 일괄답변이라! 일단 청문회에 서겠다는 것까지는 합의가 된 것이다. 큰 산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좋소! 그것까지는 우리도 노력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좋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 야당하고도 또 절충해야 하니까...아무튼 그것까지는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3제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쉽게 합의해 줄 리가 없었다. 청문회라 하면 일문일답에 보충질의까지 해도 밝혀질까 말까하는데 일괄질문에 일괄답변으로 도대체 뭘 밝힐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 한 번의 청문회로 밝히면 뭘 얼마나 밝힐 수 있겠느냐, 일단 청문회에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상징성이 있다는 논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과정에서 어는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좋다 그럼 한 번 해 보자!’는 약간은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런대로 잘 풀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백담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다시 안 나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소! 그러니 그렇게 아시오.”

문동환이 앞에서 선서 못해!

이유는 ‘선서’였다. 당시 <광주 특위>의 위원장은 재야 운동가로 활동하다 13대에 국회로 들어온 문동환 씨였다.

5공 인사들에게 ‘재야 운동권’은 빨갱이거나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시각이 있었고, 그가 설령 아무리 특위위원장이라 해도 그 앞에서는 결코 선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이미 언론에서는 백담사 청문회 성사가 보도되었고 국민들 역시 백담사 청문회에 온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터에 갑자기 안하겠다니...!

청와대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청와대 안가에서 비상회의가 열렸다. 홍성철 청와대 비서실장, 최창윤 정무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안기부장, 당에서는 이춘구 사무총장과 이한동 원내총무, 그리고 나, 이렇게 7명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청와대 측 역시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장의원! 그 선서라는 것 안하면 안됩니까?”

“어떻든 증인으로 나서는 것이고, 당연히 위증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청문회가 모양이 갖춰지는데, 어떻게 안할 수가 있습니까?”

“...”

“아무튼 저렇게 나오니까...앉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모두 이한동 총무와 나만 바라 볼 뿐이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이한동 총무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일단 한 번 어떻게 해 보죠 뭐!”

나로선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지 아득하기만 했다. 회의석상을 나오자니 이한동 총뭊는 ‘당신이 좀 더 뛰어봐!’하며 또 대책없이 ‘뛰라는’말만 반복했다.

난감했다. 겨우겨우 일괄질문에 일괄답변까지 합의를 끌어내 놨는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뛰어’보는 수밖에. 특위위원장들을 만나봤지만 그들은 ‘총무와 상의해 보지’하면서 다시 총무에게 넘기고 총무들은 다시 위원장에게 넘기고.

사실 워낙에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얘기인지라 설득하는 것 자체가 난감했다. 야당 의원들 역시 꼭 무슨 ‘선서’를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선서가 없는 청문회 모양이 과연 뭐가 되느냐는 것이었고, 설령 그렇게 하고 싶어도 국민들 앞에서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자신들도 모르겠다는 거였다.

밤 12시. 이한동 총무와 나는 평민당의 김원기 총무집을 찾아갔다. 파자마 바람으로 뛰어나온 김원기 씨가 더 놀래는 건 당연했다.

‘아니 지금 이 시간에 웬일들이요?“

“아이고 웬일이고 뭐고.. 지금 큰일 났습니다. 청문회가 낼 모레인데... 아무튼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셋이 죽는 한이 있어도 결론이 나야 합니다.”

“아니, 다 좋다 이거예요. 내가 묻고 싶은 건 청문회에 나온 증인이 선서를 안하겠다면 그 사람이 증인이 아니라는 얘긴데, 그럼 증인이 아니고 뭐란 말이요.”

“그 답답함을 우리인들 모르겠습니까? 아무튼 수를 짜내 봅시다.‘

“낸들 무슨 수가 있나...정말 큰일이요, 큰일. 낼 모레가 청문회인데...‘

김원기 총무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혼잣소리처럼 이 한 마디를 중얼거리더니 김원기 총무늕 일어나서 양주 한 병을 내왔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으랴. 그러나 아무리 술을 마신들 무슨 수가 나오겠는가! 겨우 내린 결론은 다음 날 아침 특위위원장들과 산사들이 만나 다시 얘기를 해 보자는 거였다.

다음 날 아침 황명수 의원과 문동환 의원, 그리고 민정당에서 이민섭 의원과 나, 이렇게 4명이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계속 생중계 한다며 연일 광고를 하고 있는데, 정작 국회에서는 그 청문회가 성사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판이니...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 쉬운 문제부터 풀어가자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일단 일괄질문에 일괄답변 약속만이라도 지켜줍시다. 그런데 막상 청문회가 열리면 의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여기저기서 돌발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아요. 증언은 들어보지도 못한 채 몇 분 안에 상황이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까...그런데 의원들이 돌발진문을 어떻게 막는단 말이요?“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일단 마이크를 다 치웁시다. 발언하고 싶은 사람은 단상에 올라오도록 하면 한 번 걸러지니까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요?“

원래 청문회장으로 결정한 장소는 본회의장 건너편인데 예결위원회가 항시 사용하던 곳으로 의원석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일단 그 마이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위원장의 권위가 서기 위해서라도 위원장 마이크와 발언대의 마이크만 있으면 조금은 질서가 잡힐 것 같으니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종아요! 일단 그 문제는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야당 의원들 역시 상황의 급박함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라 그 제안만은 선뜻 응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선서 문제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조아리고 방법을 찾아본 들 ‘선서없는 증인’이라는 형식은 존재하지 않으니, 우리인들 그 방법을 찾아 낼 재간이 없었다. 바로 이틀 후면 청문회였다.

도대체 선서가 뭐야?

청와대 측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한동 총무가 그랬는지 백담사 측에는‘모든 것이 잘 되었다’는 의견이 전달된 듯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강경했던 백담사 측에서 청문회에 나오겠다고 할 리가 없었다. 정작 ‘잘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드디어 청문회 날 아침!

TV에서는 백담사를 출발했다 어쩐다 하면서 계속 생중계가 나오고, 일부 여당의원들은 예행연습을 한다 어쩐다 하면서 북새통을 피우고, 이한동 총무는 계속 ‘어떻게 됐어? 빨리 해 봐!“ 하면서 재촉을 해대는데...정작 해결된 건 하나도 없으니 사이에 낀 나로선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안에 앉아 있는데 그 때 갑자기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있었다.

“도대체 그 놈의 선서라는 게 뭐야?”

나는 정말 그 선서가 뭔지, 하도 골머리를 썩다보니 이제는 나도 헷갈리는게 일단 그거라도 알아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몇 날 며칠을 그 놈의 ‘선서’라는 것 때문에 그 고통을 당한 생각을 하니 일견 분하다는 생각도 들고, 괜히 그 놈의 ‘선서’라는 것에 있는대로 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다.

재빨리 형사소송법을 뒤적였다. 찾아보니, 말 그대로 선서는 선서였다.

양심에 따라 증언하며 그 증언이 위증일 때는 어떤 처벌도 받겠다는 증인의 약속이었다. 순간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나는 그대로 황명수 의원과 문동환 위원장을 만났다.

“그 놈의 선서가 별겁니까?”

내 느닷없는 말에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거 증인이 위증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잖아요! 그러니 정이나 그렇게 못하겠다하면 그럼 위원장에게 하지 말고 뒤돌아서서 국민에게 하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거요. 일단 선서는 선서잖아요! 안 그래요?“

“허허...그것도 선서는 선서네요!”

“지금 온 나라가 난리 법석인데,,,일단 한 번만 양보합시다!”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그렇게 해 봅시다!”

휴! 일단 두 번째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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