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을 향한 힘겨운 발걸음"
[신소희 기자]   3년 만에 인원 제한 없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어버이날이 찾아오자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뵐 생각에 자식들도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년간 인원 제한으로 모임이 어려웠고, 부모님이 고위험군에 속해 방문을 망설이는 자식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버이날'이 더 서글픈 이들이 있다.
 
오늘 그 얘기를 하려 한다.
 
(이야기 1 :잘난자식, 못난자식 )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님이 물었다.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
 
"가긴 어딜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아버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내일은 무얼 할 꺼유? "
 
"하긴 무얼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
 
"내일이 무슨 날인지나 아시우? "
 
"날은 무신 날 !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 "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 "
 
" ............... "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 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 오는데 우리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 "
 
어머님은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다.
 
"오지도 않는 자식놈들 얘긴 왜 해"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
 
"어험 ~ "
 
아버님는 할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셨다.
 
"세상 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기른 내죄지 내죄야 ! "
 
어머님은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아닌 푸념을 하였다.
 
"어험, 안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 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 "
 
아버님은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으신지 휭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다음날 어버이날이 밝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집저집 승용차가 들락거렸다.
 
"아니 이 양반이 아침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뽑고 ..."
 
어머님은 이곳 저곳 아버님을 찾아봐도 간곳이 없었다. 혹시 광에서 무얼하고 계신가? 광문을 열고 들어 가셨다. 거기엔 바리바리 싸놓은 낯설은 봇다리가 2개 있었다.
 
봇다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 병에 고추가루 한 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 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또 다른 봇다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 병에 고추가루 한 봉지 민들레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다.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 졌다.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하는데 언제 높은 산을 다녀 왔는지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며칠을 캐야 저만치 되는데 ..
 
어젠 하루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오셨던 것이다.
 
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려는지 ...어머님은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동네 어귀 장승백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계셨다.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침이를 뚝 떼고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구? 청승 떨지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오던 자식 놈들이 금년이라구 오겠수?"
 
어머님이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서야 아버님은 못이기는 척 일어나셨다.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기여? 어서 가서 아침 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 "
 
" ........... "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따라 오면서도 자꾸 동네 어귀만 처다보셨다.
 
"없는 자식 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우?  그냥 없는 듯 잊고 삽시다 "
 
" 험험 ... "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님이 애처로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 아들 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닭을 보고
 
"오늘은 어버이날이니 우리 둘이 씨 암닭이나 잡아 먹읍시다. 꺼짓거 아끼면 무얼 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 "
 
" ............ "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오늘은 고추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 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닭 잡아 술이나 한 잔 합시다 "
 
" 험험 ... "
 
그때였다.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 아브이 어므이~ " 하면서 재 너머 막내 딸과 사위가 들이 닥쳤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이라 늘 구박만 주었던 딸인데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 왔다.
 
깜짝 놀라며
 
"아니 니가 어떻게 ... 
 
" 제 몸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니가 어떻게 왔니? "
 
"어므이 아브이! 오늘 어브이 날이라 왔어. 아브이 좋아하는 쑥 버므리 떡 해가지고 왔어 "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버므리떡을 내 놓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
 
" 저이하고 나하구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런지 몰라 히히 " 
 
" 이보게! 박서방 !! 어떻게 된 건가? "
 
" 네 ! 장모님 저 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첬어요. 장인 어른께서 쑥버므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울거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
 
"그랬구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
 
" 저 사람이 쑥 버므리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 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해서 가지고 왔어유.."
 
" 에이구 몸도 성치않은 자식인데 ... "
 
소아마비로 인해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 전 한쪽 다리가 불구인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다.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 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느 사이 어머님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다.
 
"참! 아브이 어므이 이거!!"하면서 카네이션 두송이를 꺼내어 내미는 거였다.
 
"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왔어! 이쁘지? 히히"
 
"내가 달아 드릴께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다
 
"아브이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 돼 ! 알았지? 히히 "
 
" 그래 알았다 오래 살으마!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박서방 정말 고맙네 ! "
 
" 아니에요 장모님!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유 "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 "
 
" 아브이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맛이 어떨런지 몰라 히히 "
 
"그래 알았다 "
 
아버님과 어머님은 쑥 버므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눈가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참으며 " 그래 참 맛있구나 !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 흠흠 으응 .... "
 
아버님은 목이 메어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다.
 
"참! 술 술 ... "
 
사위가 잊었다는 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다.
 
"이거 아브이 어므이 드린다구 박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 갔다 캤는데 팔자구 해두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팔구 술 담은 거야 "
 
"박서방이 귀한 산삼을 캤구먼 "
 
" 네!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 뿌리 캤시유 "
 
"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 "
 
산삼주를 받아든 아버님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넘 고마워유"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않는 자식을 받아준 자네가 고맙지!"
 
" 아녀유, 저한테는 과분한 색시구먼유 "
 
"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
 
"장인장모님오래오래 사세유 "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다. 병신 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시키고 결혼식도 안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자식이었는데 ...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무리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 적이 있었던가?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병신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다. 행여 병신 자식이라고 업신여겼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불구의 몸이지만 딸의 마음이 저렇게 속 깊은 줄 이제서야 알았다.
 
아들들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딸로 인해 풀어졌다. 먼 아들보다 가까운 딸자식이 소중한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러면서 가슴 저 깊은 곳이 아려왔다.
 
정말 딸자식이 고마웠다. 아니 많이 미안했다.
 
한참 뒤 밖에서 씨 암닭 잡는 소리가 들렸다. 잘난 자식들 줄려고 키웠는데 못난 딸자식이 효자구나!...
 
▲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대구 중구의 한 쪽방촌에서 노인이 홀로 TV를 보고 있다.
(이야기 2 : 그래서 더 서글픈 쪽방촌 노인들)
 
"외로움은 말로 다 못 하지요. 그냥 외롭고 고독하고 서글픕니다."
 
가정의 달 5월이 왔지만, 쪽방촌에는 가정의 달이 오지 않았다. 가정의 달이어서 외려 더 서글픈 쪽방촌이다.
 
어버이날인 8일 오전 11시께 대구시 중구의 쪽방촌. 약 100여 명이 지내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은 노인이다. 점심시간이 다 돼 가는데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TV만 볼 뿐이었다.
 
길 건너 북적북적한 거리와 대비되는 텅 빈 쪽방촌 거리가 노인들의 서글픔을 대변하는 듯 하다.
 
쪽방촌 노인들은 바깥의 따뜻한 날씨와 들뜬 분위기를 스스로 차단했다.
 
실제로 이곳 노인들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로 주변이 북적거리니 오히려 더 '고독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러운 마음에 날씨가 좋으면 되레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80대 A씨는 "가정의 달을 잊고 산 지 오래"라며 "시끌벅적한 이 소리가 오히려 더 외롭게 만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가족이 다 같이 공원에 놀러 나온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가 될 때가 있다.어버이날만 되면 그렇게 서럽다."
 
가정의 달에는 일부러 TV를 덜 본다는 노인들도 있다.
 
최모(80)씨는 "한평생 혼자 살아 가족도 없고 주변에 아무도 없어 더 쓸쓸하다"면서 "울적한 마음에 TV도 안 보려고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TV를 보면서 가끔 위로받곤 했는데 유독 5월만 되면 TV가 보기 싫다. TV에서 보여주는 가정의 모습을 보면 내가 무엇을 잘못해 이렇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5월은 이들에게 "서글프고 외로운 달"이다.
 
배모(82)씨는 "5월은 고독"이라며 "더 외롭고 서글프고 삶의 낙도 없는 쓸쓸함만 느껴지는 달"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