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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1927' 처음이자 마지막 송해 영화로 남았다
김승혜 기자  |  shkim13@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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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08  15: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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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혜 기자] 코미디언 송해(95)가 8일 별세했다. 송해가 세상을 떠나면서 윤재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은 그의 삶을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됐다.
 
지난해 11월18일 개봉한 '송해 1927'은 국민 MC이자 현역 최고령 연예인인 송해의 일대기를 담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잘 아는 코미디언 송해의 모습과 미처 몰랐던 아버지 송해의 아픔을 진하게 담아내 호평받았다. 그는 개봉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무대 연기와 공연, 방송 진행은 많이 했지만 (영화는) 처음이라 솔직히 제작한다는 얘길 들었을 땐 자신이 없어서 출연을 마다했다. '뭔가 이뤄내고 말겠다'는 제작진의 간절한 시선에 4개월을 끌다가 출연해도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의지와 송해의 결단이 송해의 삶을 그린 유일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다큐 영화는 차를 타기보다는 지하철을 고집하는 송해의 서민적 면모, 촬영 직전까지도 방송 대본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프로페셔널로서 모습이 담겼다. 윤 감독은 간담회 당시 "작은 대사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체크하고,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선생님 모습에 촬영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코미디언의 웃음 뒤에 있는 실향민의 아픔과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비탄을 비중 있게 그린다. 영화 개봉과 함께 나온 동명 책 역시 송해와 그의 지인 인터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것은 물론이고 비극적 개인사를 갖고 있는 노인의 회한을 담았다.
 
다큐멘터리에서 송해는 본명이 송복희라고 이야기하며, 한국전쟁 당시 연평도로 피난을 갔다가 미 군함에 실려 부산으로 가던 길에 이름을 고쳐지었다고 이야기한다. "제 본명이 송복희인데, 상륙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헤맬 때 제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바다 해(海) 자를 따와서 '송해'라고요. 이 이름이 주민등록상 본명이 됐어요." 한국전쟁 당시 그는 3년 8개월 간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그는 휴전 협정 모스 암호를 전군에 직접 날렸다고 한다. "'1953년 7월27일 밤 10시를 기점으로 모든 전선의 전투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작품엔 실향민인 송해가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 방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로 2003년 8월11일 모란봉공원에서 한 '평양노래자랑'을 꼽았다. "'그럼 이것으로 평양노래자랑을 여기서 전부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통일의 한길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하는데 관중들이 '와!' 하고 함성을 내고 박수를 쳤다"며 "'아, 난 정말 지상 최대의 쇼를 했다'는 그런 통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께 인사도 못드리고 남쪽으로 넘어온 게 아직도 한이라고 말한다.
 
 '송해 1927'은 송해가 1986년 당시 스물두 살이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사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고조된다. 당시 그의 아들도 아버지처럼 가수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송해는 반대했다. "흔히 낭패를 당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만 봤지 내가 실감하지는 못했는데, 그런 느낌이 오더군요. 그런데 아들이 그랬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맨 먼저 생각한 건 걔가 하고 싶다고 한 걸 못해준 게 죄스러웠어요." 다큐에서 송해는 아들의 막내딸이 갖고 있던 아들의 자작곡 녹음 테이프를 30여 년 만에 들으며 눈물흘린다. "북에 있을 때 예술 계통으로 가겠다는 나를 아버지가 몹시 나무랐는데, 나 역시 승낙하지 않았던 겁니다. 자식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어찌 아버지 노릇을 하겠는가, 자격 잃은 아버지로서 후회가 컸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아들은 한남대교에서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한남대교를 건너지 못하고 돌아갔다.
 
   
 
간담회 당시에도 송해는 아들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없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윤 감독도 그때 "촬영 과정에서 선생님 뿐만 아니라 제작진도 많이 울었던 대목"이라고 했다. 송해는 이 다큐멘터리를 "가족 영화"라고 했다. 그는 "진심으로 바라는 게 있으면 자식들은 부모에게 호소하고, 부모는 자식을 이해해야 한다"며 "그것이 가족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송해는 '송해 1927' 간담회 때도 여전히 국민 MC였다. 그는 "여러분 질문에 솔직·명백·투명하게 답변 드릴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송해는 또 "한국 대중문화계 최고령이라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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