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심일보 대기자] 10일로 취임 한 달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의 행보와 180도 달랐다. 정치신인으로서 여의도 문법을 깨고 청와대 밖으로 나와 대통령의 문법을 깬 파격 행보를 보이고 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현안 질의를 받고, 휴일이면 보통의 시민처럼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 다소 생소한 소통 방식에 대한 우려가 없진 않지만 연착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임기 초 대중 정치인의 면모를 드러내며 권위주의를 내려놓은 적극적인 '소통' 이미지로 새로운 대통령상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윤 대통령을 지난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2022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the most influential people) 100인' 중 '지도자' 부문에 선정됐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약식 회견·'출퇴근'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의 '제왕적' 모습을 탈피하겠다고 밝혀왔던 윤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국민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집무실과 같은 건물에 기자실이 있어 대통령이 출근하는 모습이 청사에 상주하는 출입 기자들에게 노출되다 보니 취임 둘째 날, 사실상 첫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을 맞닥뜨리게 된 윤 대통령은 "(기자실) 어때요"라고 물으며 말문을 텄다. 
 
그리고는 전날 취임사에 '통합'이라는 단어가 빠진 이유에 대해 "(통합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통합의 과정"이라고 강조하며 일각의 비판에 반박하기도 했다. 이것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출근길 도어스테핑(door stepping·약식 회견)의 시작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전날까지 출근길에 취재진과 총 10차례에 걸쳐 약식 회견을 가졌다. 다음 달 초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새 관저로 개조해 이사한 뒤에도 '출퇴근하는 대통령' 모습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전에 외부 일정이 있는 날, 그리고 북한이 오전에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전 9시께 출근해 청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한덕수는 협치 염두에 두고 지명한 총리 후보자",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빠지면 국익에 피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한국 정치의 비극적인 일", "미국은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법조인)'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한다. 그게 법치국가"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가감 없이 국민에게 전해졌다. 신년 기자회견이나 대국민 담화를 통해 다듬어진 메시지를 냈던 전임 대통령들의 소통 방식에 비해 혁신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통령 집무실에서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건사랑 네이버 카페)
틀 깨는 소통과 행보
 
이날 연합뉴스는 윤 대통령 스스로 틀을 깨는 파격 소통에 나서기도 한다.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외부 일정이 없을 땐 웬만하면 현관에 서서 기자들이 즉석에서 던지는 현안 질문에 답한다. 담당 기자들조차 대통령과 한번 대면하기 어렵던 과거와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미국 백악관식 공보 방안을 구상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에 국민소통관실 실무자가 아이디어를 냈고, 윤 대통령이 국내에선 유례가 없던 이 방식을 전격 채택했다고 한다.
 
주말과 휴일의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취임 후 첫 번째 주말이었던 지난달 14일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서울 시내 백화점에 깜짝 등장해 구두 한 켤레를 샀다. 같은날 광장시장과 남산 한옥마을에도 들렀다. 경호 인력은 최소한으로만 배치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목격담과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지난달 29일에는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반려견과 함께 있는 윤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 공개됐다. 보통 부부의 휴일을 담았다. 다만, 김 여사가 대통령실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 개인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팬클럽 '건희사랑'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보안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 대통령 내외는 지난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서울시가 주최하는 한강 쓰레기 줍기 행사에 참석해 시민들과 소통하려 했으나 북한의 탄도미사일 무력 시위 소식에 계획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집무실로 출근하기도 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 음식점에서 김용현 경호처장 등과 함께 오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뉴시스에 "과거의 대통령은 구중궁궐에 파묻혀 대변인과 수석 참모들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굉장히 혁신적인 소통 방식"이라며 "국민이 그날그날 궁금해하는 걸 몇 마디라도 듣고 대통령의 의중을 알 수 있게 하는 소통 방식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또한 "주말 쇼핑이나 산책 등 보통 사람과 비슷한 일상을 보여주는 부분도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봤다. 윤 대통령은 전날 검찰 편중 인선 비판 여론에 대한 입장을 묻자 "과거에는 민변 출신이 도배했다"며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엄 소장은 "국정 현안에 대해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국민을 당혹스럽게 하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지금의 긍정적 평가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느냐는 '진정성'에 달렸다고 봤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했다"며 "정권 초기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도어스테핑 등 소통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초반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겠지만, 보여주기식으로 비쳐질 경우 국민은 식상해할 것"이라며 "소통은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일방적인 입장 표명만 있고 국민의 비판 여론을 새겨들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평가는 오래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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