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CU편의점에 싱싱생생 제품이 진열돼 있다. 싱싱채생 채소 시리즈 가격은 최저 900원(팽이버섯, 양배추 1/4통)에서 최고 4,500원(모둠쌈) 수준으로 업계 평균가 대비 30% 저렴한 가격이다.
[정재원 기자]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
 
물가, 환율, 금리가 동시에 오르는 '3중고'가 지속되며, 직장인들의 한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물가 상승은 서민뿐만 아니라 원자잿값 부담이 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도 직격탄이다. 
 
"품목별 저렴한 제품으로 꼭 필요한 것만 담아도 10만 원이 훌쩍 넘네요.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끼니를 거를 수도 없고 요즘 장보기가 무서울 지경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넘겼던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정말 피부로 느껴집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40대 주부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하소연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 치솟으며 약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과 7월 역시 5%대 상승률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서민 살림살이는 팍팍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막을 내리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도시 봉쇄 등으로 유가, 원자재 등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시장에 대한 불안을 키우면서 원화 가치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또 미국의 긴축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생긴 금리 인상 문제는 급속하게 늘어난 막대한 가계 부채를 건드리는 뇌관이 될 수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가 한국 경제를 무너뜨릴 전방위적 위기, 이른바 '퍼펙트 스톰'(초대형·복합 위기)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기름값 인상 충격, 전방위로 확산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일 대비 ℓ당 6.63원 오른 2,080.93원/ℓ에 거래 중이다. 
 
휘발유 평균가격은 지난달 26일 2,002원/ℓ으로 2,000원대를 돌파한 이래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으며, 불과 보름여 만에 2,100원대도 넘보고 있다. 
 
더구나 경유는 세금이 덜 붙는 데도,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휘발유 가격을 역전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현재 전국 주유소 평균 가격이 2,082.47원으로 휘발유보다 1.54원 더 비싸다. 오피넷 '국내 석유 제품 주간 가격동향'에 따르면 자동차용 경유 판매가격은 지난 5월3주차 ℓ당 1,976.4원으로, 보통휘발유(1,963.6원/ℓ) 가격에 앞섰고, 추세가 이달 첫째주까지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원유와 석유제품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정세에 맞춰 유가의 파고도 널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유가뿐 아니라 전쟁 등 불안한 정세 속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하면서 밀, 옥수수 등 곡물 가격과 팜유 등 식물성 유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유가, 곡물 등의 가격 상승분은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에 연동되는 전기·가스 가격과 곡물·사룟값 인상에 따른 농축산물 가격의 상승이 불가피하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 대비 5.4%로 치솟았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8년 8월 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이다.
 
특히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이보다 높은 6.7%다. 특히 식품만 놓고 봤을 때 7.1% 올랐다. 최근 식품물가 상승으로 '점심(lunch)'과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점심 식사 한 끼조차 맘 놓고 먹을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신조어다. 
 
◆원·달러 1,300원 선도 무너진다..외환시장도 요동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산에 대한 공포감으로 외환시장도 불안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4원 오른 1,286.4원에 마감했다. 한 때 1,292.5원까지 올라 1,300원 대를 위협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정상화 가속화로 달러 강세 영향이 커졌다.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
 
기업 경기마저 적신호가 들어왔다.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1~3월)에 이어, 2분기(4~6월)에도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원자재 가격 인상과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이는 제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가계 부담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널뛰는 물가에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어운선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이달 초 소비자물가동향 브리핑에서 "개인서비스 가격도 방역조치 해제라든지, 또 기대인플레이션율 상승 그리고 최근 외식품목의 확산 추이 등을 고려할 때 다음 달에도 상당 폭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고물가에 금리 인상 ‘극약 처방’…韓 성장 전망 적신호
 
 전방위적인 악재 속에서 금리 인상도 불가피해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연준(FED)은 오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 그동안 시장은 연준이 '빅 스텝'(0.5%포인트) 수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측해왔으나, 미국 소비자물가(CPI)가 4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당초 계획보다 큰 폭인 '자이언트 스텝'(0.75%p)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은 지난 1994년이 가장 최근이다.
 
미국이 큰 폭의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우리도 대응이 필요할 전망이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는 0.75~1.00%로, 만약 '자이언트 스텝'이 현실화 될 경우 최고 1.75%까지 오른다. 우리(1.75%)와 기준금리 격차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만약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이른바 '금리 역전현상'이 발생하면, 급격한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과 원화가치 하락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이에 오는 7월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기준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은 고스란히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 5월에 발표한 '글로벌 부채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4.3%로, 세계 36개국 중에 가장 높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가계 부채가 국내총생산을 넘어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행의 '2022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1분기말 가계신용 잔액은 1,859조4,000억 원으로, 전분기말보다 6,000억 원 줄었다. 하지만 거리두기 완화에 따른 민간 소비 활성화와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거래시장 상황 등에 따라 가계 빚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직방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난 4월 기준 연 3.9%에서 향후 연 7%로 인상된다고 가정했을 때, 서울 아파트의 월 대출 상환액은 194만 원에서 261만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 소비에 큰 충격으로 닥칠 경우 경기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26일 2.7%로 전망치를 낮췄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낮췄다. 한국경제연구원도 2.5%로 수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5%로 낮췄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도 2.4%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는 오는 16일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한다. 기획재정부는 여기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대에서 2%대 중후반으로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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