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배우자가 17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피살사건과 관련한 향후 법적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재원 기자] “제 아버지 성함은 이 대자 준자, 이대준입니다. 제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닙니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유가족은 17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월북 프레임을 만들려고 조작된 수사를 한 것”이라며 “(이전 수사결과는) 전 정권의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이대준 씨의 아내 권모 씨(43)는 기자회견에서 아들(19)이 쓴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편지에는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온 1년 9개월간의 설움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감사 인사가 담겨있었다. 권 씨는 “앞으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처벌받고, 남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당시 공무원 이 씨의 근무함정이었던 ‘무궁화 10호’ 직원들의 2020년 9월 24일자 진술조서 8건이 공개됐다. 유족 측 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월북 관련 진술에는 터무니없다는 말밖에 없는데 당시 해경은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월북 정황이 있다고만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정보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공무집행방해죄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김 변호사는 16일자 국방부 보도자료를 언급하며 “국방부가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하달 받은 지침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서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 외 다른 책임자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고소 고발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형 이 씨는 기자회견 전 본보 기자와 만남에서 “당시 직무를 유기하고 사건을 덮으려 했던 문 전 대통령은 반드시 고발할 예정이다”며 “정보공개 결과를 지켜본 후 문 전 대통령 외에도 해군, 해경, 국방부, 청와대 등 사건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전부 고소 고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또 이날 유가족은 북한군에게 살해되고도 ‘월북자’ 낙인이 찍혔던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아들 이모씨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쓴 감사편지도 공개했다.
 
다음은 아들 이 씨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감사편지 전문이다.
 
▲ 2020년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배우자(오른쪽)가 17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피살사건과 관련한 향후 법적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님께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아들입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버지의 사망 발표를 시작으로 죽음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1년9개월을 보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전 정부를 상대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맞서는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하며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음을 부끄럽지만 고백합니다.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는 월북자로 낙인찍혔고 저와 어머니, 동생은 월북자 가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원망스러웠습니다. 분노했습니다. 아버지도 잃고 꿈도 잃었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또래 친구들이 누릴 수 있는 스무 살의 봄날도 제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의 월북자 낙인을 혹시 주변에서 알게 될까 봐 아무 일 없는 평범한 가정인 척 그렇게 살았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멈춰서는 안 되기에 끝없이 외쳐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니라고…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신 윤석열 대통령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한 국민이 적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시신까지 태워지는 잔인함을 당했지만, 이 일련의 과정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여 비난받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저는 점점 주눅 들어갔지만 지난 1월 31일날 만나 뵈었을 때 제게 꿈이 있으면 그대로 진행하라고 해주셨던 말씀이 너무 따뜻했고 진실이 곧 규명될 테니 잘 견뎌 주기 바란다는 말씀에 다시 용기가 났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것은 따뜻한 이 한마디였고 지켜지는 어른들의 약속이었습니다.
 
대통령님, 제 아버지 성함은 “이 대자 준자, 이대준” 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는 월북자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고 떳떳하게 아버지 이름을 밝히고 월북자가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대통령님 덕분에 이제야 해봅니다.
 
제 아버지도 똑같이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었습니다. 태극기를 직접 사 오시고 국경일마다 일찍 일어나 직접 국기를 게양하는 애국심이 있는 분이셨고 모르는 할머니께 홍시를 건네고 무거운 짐을 들어 드리는 따뜻한 정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물에 빠진 어민을 구하셔서 표창장도 받으셨지만 정작 아버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 순간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월북자로 만들어 그 죽음의 책임이 정부에 있지 않다는 말로 무참히 짓밟았고 직접 챙기겠다, 늘 함께하겠다는 거짓 편지 한 장 손에 쥐여주고 남겨진 가족까지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원망도 분노도 씻으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대통령님께서 도와주셨기에 저는 이제 제 위치로 돌아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은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윤석열 대통령님의 정부를 믿고 남은 일은 어머니, 큰아버지, 김기윤 변호사님께 맡기고 저는 제 길을 열심히 닦아 나가겠습니다.
 
아버지의 오명이 벗겨지는 기사를 보면서 그 기쁨도 물론 컸지만, 전 정부, 전 대통령께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혹시나 또다시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님께서 저와의 약속을 지켜주신 부분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대통령님, 오늘은 제가 스무 살을 맞는 생일입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슬픈 생일이지만 오늘만큼은 대통령님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제게 큰 선물을 보내신 것 같아서 눈물이 납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동생을 잘 다독이고 어머니께 힘이 되는 아들이 될 것이며 이 힘겨움을 끝까지 함께 해주고 계신 큰 아버지와 김기윤 변호사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 바른 인성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해가겠습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함께 걸어가시는 국민의 대통령으로 남으시길 바라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다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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